五言絶句(오언절구)
五言絶句(오언절구)
五言絶句는 간략하게 ‘五絶’이라고도 한다. 絶句와 律詩는 모두 近體詩에 속하는데 古體詩와 對가 된다. 近體詩의 格律을 말하건대, 句數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用字의 平仄과 押韻의 방식에 모두 엄격한 제한이 있어서 古體詩마냥 자유롭지를 못하다. 이 때문에 絶律의 형성은 中國의 形式格律文學 발전이 최고 極致에 도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詩體는 또한 안으로 품고 있는 내용이 無限함을 요구한다. 비록 少量의 문자, 곧 五絶은 20字, 七絶은 28字, 五律은 40字, 七律은 56字만을 사용하지만 도리어 시인의 복잡한 情感과 뒤섞인 人生面을 표현한다. 詩情에서나, 詩意에서나, 詩境을 나타냄에 있어서나, 또는 情韻이나 詩趣, 化境을 만듦에 있어서나 모두 뜻은 말의 밖에 있고, 말은 다하였으나 뜻은 무궁한 경지를 능히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絶句와 律詩는 中國文學 가운데에서 가장 完美하고 가장 高妙한 데에 도달한 藝術의 結晶이다.
이른바 絶句는 또 斷句, 短句, 截句라고도 지칭하는데 모두 다 4句體의 少詩이며 ‘잘라서 그친다.’는 뜻이 있고 ‘뜻은 말 바깥에 있다.’는 原則에 合한다. 淸나라 李鍈(이영)의 ≪詩法易簡錄시법이간록≫에 말하기를, ‘絶句는 含蓄이 있음을 귀히 여기니 이른바 絃外之音으로서 맛 밖의 맛이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이른바 含蓄이란 것은 그 나타나지 않음을 귀히 여기며 그 포괄함을 더욱 귀히 여긴다.”고 하였다. 곧 詩 가운데의 情意로 하여금 마음껏 펴서 홍건하게 하나 오히려 다하지 못한 뜻을 가지는 것이다.
絶句의 由來는 唐代에 시작되지 않았으며 일찍이 漢朝에 있었으니, 곧無名氏의 斷句가 있다.
藁砧今何在( 鈇指夫字) 山上復有山(指出字)
何當大刀頭( 環指還字) 破鏡飛上天(指半月二字)
작두가 지금 어디에 있는고?(鈇<도끼>를 隱喩하고 ‘夫’字를 가리킨다.)
山위에 또 山이 있도다.(出字를 가리킨다.)
어찌 큰 칼을 당하리오?(環<고리>을 은유하고, ‘還’字를 가리킨다.)
깨어진 거울이 하늘로 날라 올라갔다.(半月 두 자를 가리킨다.)
이는 全篇을 通해 諧謔的으로 隱喩한 詩인데, 따로 깊은 뜻은 없고 다만 ‘夫出半月還(지아비가 나가서 반달만에 돌아왔다.)’을 隱喩했을 뿐이다.漢代의 古樂府詩를 시험삼아 살펴보면, 오언사구의 소시가 이미 발생하여 있었으니, ‘枯魚過河泣(마른 고기가 河水를 건너며 운다.)’과 ‘高田種麥(높은 밭에 보리를 간다.)’ 따위가 곧 이것이다. 六朝時代에는 五言四句의 小詩가 더욱 流行하였으나 다만 平仄에 대한 제한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吳의 <聲歌曲> · 西曲歌>·, 梁의 <鼓角橫吹曲>같은 것은 모두 다 小詩 短歌의 형태이다. 六朝時代에는 또한 絶句와 短句의 명칭이 있었다. ≪南史≫의 梁宗室傳記에 宋 文帝의 아홉째 아들 劉昶을 義陽王에 봉했다 하고, “大明 中에 늘 嫌疑를 입어 이에 밤에 문을 열고 魏로 도망가는데 도중에서 慷慨하여 短句를 지어 말하기를 ‘白雲滿障來 黃塵半天起 關山四面絶 故鄕幾千里(흰 구름은 障 땅 가득히 차고 누런 먼지 하늘 중간에 이는구나. 關山은 사방으로 끊기었는데 고향은 몇 천리이더냐?)’라 하였다.”고 실려 있다. 또 ≪南史≫梁本記에 “梁 元帝가 魏에 항복하고 갇혔는데, 술을 달라 하여 마시고 詩 四絶을 지었다. 그 하나에 말하기를 ‘南風且絶唱 西陵最可悲 今日還蒿里 終非封禪詩(남풍에 노래를 그치려 하니, 西陵이 가장 슬프구나. 오늘 시골로 돌아왔건만, 끝내 封禪할 때는 아니구나.)라 하였다. 그러므로 絶句가 생겨남은 律詩이전이었으며, 律詩 가운데의 四句를 잘라서 이룬 시체가 아니고, 그것은 六朝 小詩가 발흥함에 由來하였다. 게다가 齊나라 永明間에 聲律說이 형성되자 이에 絶句 또한 平仄을 강구하게 되었고, 齊·梁에 이르러서는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絶句의 種類에는 대략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1.律絶(율절) : 平仄이 平起格 혹은 仄起格의 定式에 合하는 絶句인데 또한 今絶이라 칭한다.
2.樂府絶(악부절) : 본디 음악에 들어가는 것을 주로 삼아서 歌行體에 속하는 絶句이다. 唐人들의 新樂府 가운데는 律詩의 영향을 받아서 대체로 平仄이 律에 맞는다.
3.古絶(고절) :平仄을 造化시키지 않은 四句詩이다. 古詩와 서로 같다.
4.拗絶(요절) : 律絶과 古絶을 섞어 써서 黏(점)과 對를 강구하지 않은 絶句이다.
唐나라 사람 董文煥(동문환)이 絶句를 三種으로 나누었으나, 지금의 ≪唐詩三百首≫가운데서는 五·七言絶句에는 모두 樂府가 있어 수록하였는데, 악부라는 제목을 쓴 것은 歌行體로이루어진 絶句이다. 그러므로 樂府絶을 더 보탰다. 董文煥의 ≪聲調譜≫에 말하기를, “五絶의 法은 비록 비슷하게 齊·梁에서 시작되었으나 黏과 對는 아직 정하여지지 아니하였다. 唐人들은 이 詩體를 律絶·古絶·拗絶로 구별했다. 律絶이란 것은 세상에 전하는 바 平起, 仄起의 四句가 이것이다. 이 四句를 하나만 사용하면 絶句가 되고 둘을 사용하면 律詩가 된다. 그 用韻은 平이 많고 仄이 적으며 律詩와 대체로 서로 같다. 古絶이란 것은 平仄은 말하지 않고 韻을 쓰는 四句가 곧 이것이다. 그 用韻은 平聲이 매우 많은데 仄聲은 곧 오로지 이 體로서 正式을 삼으니 古詩 또한 같다. 律絶과 古絶의 律格이 비록 다르나 黏과 對의 法則은 하나이니 이것이 唐人 絶句의 正式이다. 拗絶이란 것은 곧 齊·梁 여러 詩의 法式인데 律絶과 古絶의 各 句를 섞어 쓸 수 있으며, 또한 黏과 對를 하지 않아 律絶과 古絶의 두 體와는 매우 다르고 拗律(요율)과도 또한 다르다. 이 格이 가장 오래 되어서 盛唐人 사이에 쓰는 者가 있었다.”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이 絶句를 씀에는 많이들 拗絶에 의거하여 平仄을 律에 맞게 한다. 그러므로 今絶이라 한다.
지금 五言絶句의 平仄 定式을 가지고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一. 仄起格平聲韻定式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韻,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叶
(首句에 韻을 쓰면 응당 仄仄仄平平韻이 되어야 한다.)
二. 平起格平聲韻定式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韻,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叶,
(首句에 韻을 쓰면 응당 平平仄仄平韻이 되어야 한다.)
三. 仄起格仄聲韻定式
仄仄平平仄韻, 平平平仄仄叶, 平平仄仄平 仄仄平平仄叶
四. 平起格仄聲韻定式
平平平仄仄韻, 仄仄平平仄叶, 仄仄仄平平, 平平平仄仄叶
적색 표시의 平仄은 평측 어느 것으로도 混用될 수 있음을 表示하였다. 通常 絶句를 씀에는 平聲韻이 많고 仄聲韻이 적다. 그러므로 第一 · 第二의 定式이 常用되는 것이니 처음 詩를 배우는 者는 마땅히 익히 기억해야 한다. 이 밖에 絶句의 用韻(押韻)은 律詩의 用韻과 같아서, 다만 한 韻안의 글자에 限하고 通押의 現象은 있을 수 없다.
絶句의 作法은 起·承·轉·合(結)의 方式을 採用하여 지극히 분명하다. 絶句는 모두 4句인데, 首句는 起가 되어 혹 比興을 일으키고 혹은 일을 敍述하거나 景을 써서 일으켜 모두 詩 題目에 들어맞게 한다. 次句는 承이 되는데 首句의 뜻을 잇는다. 第三句는 轉이 되는데 반드시 바꾸어 靈活(灵活[línghuó]융통성이 있다. 원활하다.)함을 얻어야 비로소 韻致를 가지게 된다. 第四句는 合이 되는데 全面을 거두어 맺어 딱 잘라 그친다. 全詩에서 驚語는 항상 3 ·4句 가운데 있다. 意象과 形象의 결합을 만들 뿐만 아니라 情과 景의 交融하는 境界에 다다라야 한다.
元나라 楊載는 ≪詩法家數≫ 가운데에서 絶句의 作法을 論하였는데 참고할 만하다. 그는 말하였다.
“구부러지고 돌아오며 거친 것을 깎고 간단한데 나아가고자 하여 句는 끊어져도 뜻은 끊이지 않는다. 많이들 第三句로 主를 삼고 第四句는 이를 發한다. 實接과 虛接이 있고, 承接하는 사이에 열고 닫음이 相關하며, 反과 情이 서로 의지하고, 順과 逆이 應하고, 宮과 商이 서로 어울린다. 대체로 起·承 두 句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평이하게 바로 서술하여 일으킴이 아름답게 되니 조용히 이를 잇는 것이 옳다. 구부러지고 변화하는 것 같은 노력에 이르러서는 전체가 제3구에 있으니, 만약 여기에서 轉變이 좋게 되면 제4句는 마치 順流의 배와 같아진다.”
이러므로 唐人 絶句 가운데 千古의 絶唱으로 전해오는 것은 3·4 兩句에 있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孟浩然의 <春曉>에 “‘夜來風雨聲 落花知多少’와 李商隱의 <登樂遊原>에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과 韋應物의 <滁州西澗>에 ‘春湖帶雨晩來急 野渡無人舟子橫’그리고 王維의 <渭城曲>에 ‘勸君更盡一杯酒 西出兩關無故人’등 무릇 이러한 종류는 다 枚擧(매거)할 수가 없다. 다만 우리들은 더 많이 諷誦하여 곧 그 가운데의 三味를 깨닫는 데 어렵지 않아야 한다.
이 밖에, 前人들이 絶句는 律詩 가운데의 4句를 截取(절취)하여 만들었다고 말하는 데, 정히 이로서 絶句의 句法 組織을 설명할 수 있다. 만약 律詩의 兩聯을 截取하면, 곧 앞 兩句는 풀어헤쳐지고(行散) 뒤 兩句는 對仗의 형상을 이루니 孟浩然의 <宿健德江 >이 곧 이것이다. 만약 律詩의 가운데와 뒤의 兩聯을 截取한다면, 앞 兩句가 對仗이고 뒤 兩句는 行散의 현상을 이루니 杜甫의 <八陣圖>가 곧 이렇다. 만약 律詩의 中間 兩聯을 截取한다면, 前後 兩句가 다 行散의 현상을 이루니 劉長卿의 <送上人>이 곧 이렇다. 이상 네 가지 현상의 絶句가 가지는 句法을 포괄하니 全人들의 작품에서 본다면 역시 四句가 行散하고 對仗하지 않은 것이 많다. 이와 같이 자유롭게 달릴 수 있어 神味가 매우 만족스럽게 된다.
그 다음 絶句 가운데의 拗救의 방법에 관해서는 律詩와 서로 같다. 이른바 ‘拗救’란 定式上의 글자에 있어서 꼭 平聲字를 놓아야 할 곳에 仄聲을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래의 仄字를 놓을 곳에 平聲을 놓아 이를 拗救한다. 반대의 경우 上面에 仄을 놓을 곳에 平聲을 썼다면 그렇게 下面의 平을 놓을 곳에 仄聲을 써서 이를 補救한다. 만약 拗인데도 救하지 않는다면 곧 不合律이다. 지금 絶句 가운데의 拗救의 現象을 가지고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單拗
單拗는 本句 自救이다. 발생하는 곳은 五言出句의 第三字와 七言出句의 第五字이다. 이는 본래 平’이라야 맞는데 ‘仄’을 써서 곧 律에 合하지 못하고 拗가 되었다. 그러므로 五言에 있어서는 同句의 第四字, 七言에 있어서는 第六字가 본래 ‘仄’이라야 맞지만 곧 平聲으로 고쳐서 위의 字를 구한다. 이러한 平仄互換의 方法이 곧 單拗이다. 過를 救한한 뒤에는 그대로 律에 맞는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移舟泊(仄)煙(平)渚 日暮客愁新<孟浩然의 (宿健德江)> [○○●○●̌/ ●●●○○]
正是江南好(仄)風(平)景 落花時節又逢君<杜甫의 (江南逢李龜年)> [○●○○●○●/ ●○●●●○○]
※ ○○●○●/̌ ●●●○○의 형식은 원래 [○○○●●̌/ ●●●○○]이, 그리고
○●○○●○●/ ●○●●●○○은 원래 [○●○○○●●/ ●○●●●○○]이 합률적인 定式이다.
그런데 오언에서의 제3~5字, 칠언에서의 제5~7字의 평측 ‘○●●’이 ‘●○●’으로 바뀌는 것은 본래의 평측배치에 어긋난다. 즉 평측의 원칙인 ‘二四不同(제2자와 제4자의 평측은 같지 않다)’, ‘二六對(제2자와 제6자의 평측은 같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예로부터 이 방법만은 예외로 인정되어왔다. 일명 單拗는 ‘挾平格(협평격)’으로도 불리는데, 평성이 측성사이에 끼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예는 杜甫의 시에서 자주 나온다.
本句自救(본구자구)는 글자 그대로 본래의 句 즉 拗가 발생한 句에서 스스로 拗를 救하는 것으로 바꾸어 말하면 그 句가 아닌 다른 句에서 拗를 救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본구자구에 상대가 되는 말은 對句相救이다.
.
2. 雙拗
雙拗는 곧 對句로 서로 救하는 것이다. 무릇 五言 出句의 第二字와 第四字를 모두 仄聲으로 쓰거나, 七言의 出句 第四字와 第六字를 모두 仄聲으로 써서 곧 律에 不合하여 拗가 되었다면, 五言 對句의 第三字, 七言 對句의 第五字를 반드시 平聲을 써서 上句를 救한다. 이렇게 對句가 出句를 救하는 方法이 곧 雙拗이다. 過를 救한 後에는 그대로 合律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이다.
向晩(仄)意不(仄)適 驅車登(平)占原 <李商隱 (登樂遊原)> [●●●●●/ ○○○●○]
南朝四百(仄)八十(仄)寺 多少樓臺煙(仄)雨中 <杜牧 (江南春截句)> [○○●●●●● ○●○○○●○]
※ 出句의 제2자와 제4자를 仄聲(●)으로 썼기 때문에 다섯 자 모두가 仄聲(●●●●●)으로 되었거나 혹은 “●●○●●” “○●●●●” 등 형식의 拗句가 되었을 때 對句의 제3자는 반드시 平聲(○)으로써 句를 정돈해서 救한다. 칠언의 경우라면 출구 제4자, 6자 兩字가 모두 仄(●)이면 對句의 제5자는 반드시 平(○)으로 해야만 하는 것으로서 作詩하는 者가 비교적 적을 뿐 이 역시 單拗와 마찬가지로 기본 정신은 훼손된 平(○)을 회복하는 데 있다. ≪한시작법의 정석(하영섭,황필홍 저≫
★ 측기식이므로 제4자는 필히 평성이 되어야하는데 측성이 된 상황 | 五言仄起格平聲韻定式 |
向晩意不適(향만의부적)●●●●● : 날은 저무는데 기분이 울적하여 驅車登古原(구거등고원)○○○●◎ : 수레 몰고 높은 언덕에 올라본다. 夕陽無限好(석양무한호)●○○●● : 석양은 한없이 좋기만 한데 只是近黃昏(지시근황혼)●●●○◎ : 다만 아쉽나니 황혼이 가까워라 | ●●○○●(a측두측각) ○○●●◎ (B평두평각) ○○○●●(b평두측각) ●●●○◎(A 측두평각) |
★ 측기식이므로 제6자는 필히 평성이 되어야하는데 측성이 된 상황 | 七言仄起格平聲韻定式 |
千里鶯啼綠映紅(○●○○●●◎)천리에 꾀꼬리 울고 꽃 붉게 피었는데 水村山郭酒旗風(●○○●●○◎)강마을 산 밑 술집 깃발 바람에 펄럭이네. 南朝四百八十寺(○○●●●●●)남조의 사백 팔십 사찰 多少樓臺烟雨中(○●○○○●◎)얼마나 많은 누대들 이슬비에 젖을까 | ●●○○●●◎(B평두평각) ○○●●●○◎(A측두평각) ○○●●○○●(a측두측각) ●●○○●●◎(B평두평각) |
3. 孤平拗救
孤平拗救 또한(一種의) 對句相救이다. 出句 第三字는 본래 平인데 仄을 쓰면 孤平의 현상을 이룬다. 그러면 對句 第三字는 반드시 平을 써서 이를 구해야 한다. 七言이면 제5자에 있다. 前人들은 이러한 要求의 현상에 대해서도 또한 雙拗라고 불렀다. 그러나 제2종(雙拗)와 혼동되기 쉬우므로 구별하기 위해, 현재는 그것들을 가지고 孤平 拗救라고 부른다. 過를 救한 뒤에는 그대로 合律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但見淚(仄)痕濕 不知心(平)恨誰 <李白 (怨情)> [●●●○● / ●○○●◎]
兒童相見不(仄)相識 笑問客從何(平)處來 <賀知章 (回鄕偶書)> [○○○●●○● / ●●●○○●◎]
詩 가운데 出句의 ‘痕’과 ‘相’은 孤平을 범했다. 곧 ‘淚’와 ‘不’은 본래 平을 써야 하나 仄을 썼으니 이것이 곧 拗救라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對句의 ‘心’과 ‘何’에서 平聲을 사용해 救하였다.
4. 失黏과 失對
이것은 또 拗黏과 拗對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른바 ‘對’란, 곧 每句의 제2자와 제4자의 평측은 반드시 上句의제2자, 제4자와 相反되는 것이다. 소위 ‘黏’이라 하는 것은, 곧 每句의 제2자, 제4자의 平仄이 반드시 上句의 제2자, 제4자와 서로 같은 것이다. 七言에서는 제6자까지도 확대되는데, 만약 定式대로가 아니면 곧 拗이다. 무릇 平仄이 고르지 못한 것을 ‘失黏’이라 하는데, 또한 失嚴‘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혹 ’折腰體‘라고도 한다. 盛唐이전에는 詩人들이 黏對는 별로 충분히 강구하지 않고, 보통 出句의 平仄을 對句의 平仄과 互換하는 것으로 또한 合律이라 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後人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失黏, 失對라고 일컬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春眠(平)不覺(仄)曉 處處(仄)聞啼(平)鳥 夜來(平)風雨(仄)聲 花落(仄)知多(平)少 <孟浩然 (春曉)>
渭城(平)朝雨(仄)浥輕(平)塵 客舍(仄)靑靑(平)柳色(仄)新 勸君(平)更盡(仄)一杯(平)酒
西出(仄)陽關(平)無故(仄)人. <王維 (渭城曲)>
|
| 春眠不覺曉 | ○○●●● |
反 |
| ||
處處聞啼鳥 | ●●●○● | ||
|
| ||
反 |
| ||
夜來風雨聲 | ●○○●○ | ||
|
| ||
反 |
| ||
花落知多少 | ○●○○● | ||
|
|
<춘효>
|
| 渭城朝雨浥輕塵 | ●○○●●○○ |
反 |
| ||
客舍靑靑柳色新 | ●●○○●●○ | ||
|
| ||
反 |
| ||
勸君更盡一杯酒 | ●○●●●○● | ||
|
| ||
反 |
| ||
西出陽關無故人 | ○●○○○●○ | ||
|
|
<위성곡>
|
| 春眠不覺曉 | ○○●●● |
反 |
| ||
處處聞啼鳥 | ●●●○● | ||
|
| ||
反 |
| ||
夜來風雨聲 | ●○○●○ | ||
|
| ||
反 |
| ||
花落知多少 | ○●○○● | ||
|
|
<춘효>
|
| 渭城朝雨浥輕塵 | ●○○●●○○ |
反 |
| ||
客舍靑靑柳色新 | ●●○○●●○ | ||
|
| ||
反 |
| ||
勸君更盡一杯酒 | ●○●●●○● | ||
|
| ||
反 |
| ||
西出陽關無故人 | ○●○○○●○ | ||
|
|
<위성곡>
<4句는 3句와 반대로 ○, ● 으로>.................... <4句는 3句와 반대로 ○,●,○ 으로>
되어야 合律이 된다.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노곤한 봄잠에 동트는 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여기 저기 새 우는 소리로다.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지난 밤의 비바람 소리에
花落知多少[화낙지다소] 꽃잎 떨어짐이 그 얼마리오. <춘효>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 땅, 아침 비가 흙먼지를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여관집 둘레 푸른 버들 빛 더욱 산뜻해라.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에 권하노니 다시 한 잔의 술을 들라.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친구 없으리니<위성곡>
이상의 두 수는, 제3, 제4 兩句의 平仄互換을 예로 들 것 같으면 곧 定式의 平仄에 合한다. 그래서 唐나라 사람 중에는 이러한 현상을 律格에 合하지 않는다고 보지 않았다. 그러나 후인들은 이런 호환의 현상을 失黏, 失對라고 하였다. [邱燮友 著 ·安秉熱 역, ≪한석 당시삼백수≫]
<2016. 09. 12. 孤松筆>
五言絶句는 간략하게 ‘五絶’이라고도 한다. 絶句와 律詩는 모두 近體詩에 속하는데 古體詩와 對가 된다. 近體詩의 格律을 말하건대, 句數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用字의 平仄과 押韻의 방식에 모두 엄격한 제한이 있어서 古體詩마냥 자유롭지를 못하다. 이 때문에 絶律의 형성은 中國의 形式格律文學 발전이 최고 極致에 도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詩體는 또한 안으로 품고 있는 내용이 無限함을 요구한다. 비록 少量의 문자, 곧 五絶은 20字, 七絶은 28字, 五律은 40字, 七律은 56字만을 사용하지만 도리어 시인의 복잡한 情感과 뒤섞인 人生面을 표현한다. 詩情에서나, 詩意에서나, 詩境을 나타냄에 있어서나, 또는 情韻이나 詩趣, 化境을 만듦에 있어서나 모두 뜻은 말의 밖에 있고, 말은 다하였으나 뜻은 무궁한 경지를 능히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絶句와 律詩는 中國文學 가운데에서 가장 完美하고 가장 高妙한 데에 도달한 藝術의 結晶이다.
이른바 絶句는 또 斷句, 短句, 截句라고도 지칭하는데 모두 다 4句體의 少詩이며 ‘잘라서 그친다.’는 뜻이 있고 ‘뜻은 말 바깥에 있다.’는 原則에 合한다. 淸나라 李鍈(이영)의 ≪詩法易簡錄시법이간록≫에 말하기를, ‘絶句는 含蓄이 있음을 귀히 여기니 이른바 絃外之音으로서 맛 밖의 맛이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이른바 含蓄이란 것은 그 나타나지 않음을 귀히 여기며 그 포괄함을 더욱 귀히 여긴다.”고 하였다. 곧 詩 가운데의 情意로 하여금 마음껏 펴서 홍건하게 하나 오히려 다하지 못한 뜻을 가지는 것이다.
絶句의 由來는 唐代에 시작되지 않았으며 일찍이 漢朝에 있었으니, 곧無名氏의 斷句가 있다.
藁砧今何在( 鈇指夫字) 山上復有山(指出字)
何當大刀頭( 環指還字) 破鏡飛上天(指半月二字)
작두가 지금 어디에 있는고?(鈇<도끼>를 隱喩하고 ‘夫’字를 가리킨다.)
山위에 또 山이 있도다.(出字를 가리킨다.)
어찌 큰 칼을 당하리오?(環<고리>을 은유하고, ‘還’字를 가리킨다.)
깨어진 거울이 하늘로 날라 올라갔다.(半月 두 자를 가리킨다.)
이는 全篇을 通해 諧謔的으로 隱喩한 詩인데, 따로 깊은 뜻은 없고 다만 ‘夫出半月還(지아비가 나가서 반달만에 돌아왔다.)’을 隱喩했을 뿐이다.漢代의 古樂府詩를 시험삼아 살펴보면, 오언사구의 소시가 이미 발생하여 있었으니, ‘枯魚過河泣(마른 고기가 河水를 건너며 운다.)’과 ‘高田種麥(높은 밭에 보리를 간다.)’ 따위가 곧 이것이다. 六朝時代에는 五言四句의 小詩가 더욱 流行하였으나 다만 平仄에 대한 제한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吳의 <聲歌曲> · 西曲歌>·, 梁의 <鼓角橫吹曲>같은 것은 모두 다 小詩 短歌의 형태이다. 六朝時代에는 또한 絶句와 短句의 명칭이 있었다. ≪南史≫의 梁宗室傳記에 宋 文帝의 아홉째 아들 劉昶을 義陽王에 봉했다 하고, “大明 中에 늘 嫌疑를 입어 이에 밤에 문을 열고 魏로 도망가는데 도중에서 慷慨하여 短句를 지어 말하기를 ‘白雲滿障來 黃塵半天起 關山四面絶 故鄕幾千里(흰 구름은 障 땅 가득히 차고 누런 먼지 하늘 중간에 이는구나. 關山은 사방으로 끊기었는데 고향은 몇 천리이더냐?)’라 하였다.”고 실려 있다. 또 ≪南史≫梁本記에 “梁 元帝가 魏에 항복하고 갇혔는데, 술을 달라 하여 마시고 詩 四絶을 지었다. 그 하나에 말하기를 ‘南風且絶唱 西陵最可悲 今日還蒿里 終非封禪詩(남풍에 노래를 그치려 하니, 西陵이 가장 슬프구나. 오늘 시골로 돌아왔건만, 끝내 封禪할 때는 아니구나.)라 하였다. 그러므로 絶句가 생겨남은 律詩이전이었으며, 律詩 가운데의 四句를 잘라서 이룬 시체가 아니고, 그것은 六朝 小詩가 발흥함에 由來하였다. 게다가 齊나라 永明間에 聲律說이 형성되자 이에 絶句 또한 平仄을 강구하게 되었고, 齊·梁에 이르러서는 정식으로 성립되었다.
絶句의 種類에는 대략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1.律絶(율절) : 平仄이 平起格 혹은 仄起格의 定式에 合하는 絶句인데 또한 今絶이라 칭한다.
2.樂府絶(악부절) : 본디 음악에 들어가는 것을 주로 삼아서 歌行體에 속하는 絶句이다. 唐人들의 新樂府 가운데는 律詩의 영향을 받아서 대체로 平仄이 律에 맞는다.
3.古絶(고절) :平仄을 造化시키지 않은 四句詩이다. 古詩와 서로 같다.
4.拗絶(요절) : 律絶과 古絶을 섞어 써서 黏(점)과 對를 강구하지 않은 絶句이다.
唐나라 사람 董文煥(동문환)이 絶句를 三種으로 나누었으나, 지금의 ≪唐詩三百首≫가운데서는 五·七言絶句에는 모두 樂府가 있어 수록하였는데, 악부라는 제목을 쓴 것은 歌行體로이루어진 絶句이다. 그러므로 樂府絶을 더 보탰다. 董文煥의 ≪聲調譜≫에 말하기를, “五絶의 法은 비록 비슷하게 齊·梁에서 시작되었으나 黏과 對는 아직 정하여지지 아니하였다. 唐人들은 이 詩體를 律絶·古絶·拗絶로 구별했다. 律絶이란 것은 세상에 전하는 바 平起, 仄起의 四句가 이것이다. 이 四句를 하나만 사용하면 絶句가 되고 둘을 사용하면 律詩가 된다. 그 用韻은 平이 많고 仄이 적으며 律詩와 대체로 서로 같다. 古絶이란 것은 平仄은 말하지 않고 韻을 쓰는 四句가 곧 이것이다. 그 用韻은 平聲이 매우 많은데 仄聲은 곧 오로지 이 體로서 正式을 삼으니 古詩 또한 같다. 律絶과 古絶의 律格이 비록 다르나 黏과 對의 法則은 하나이니 이것이 唐人 絶句의 正式이다. 拗絶이란 것은 곧 齊·梁 여러 詩의 法式인데 律絶과 古絶의 各 句를 섞어 쓸 수 있으며, 또한 黏과 對를 하지 않아 律絶과 古絶의 두 體와는 매우 다르고 拗律(요율)과도 또한 다르다. 이 格이 가장 오래 되어서 盛唐人 사이에 쓰는 者가 있었다.”고 하였다. 지금 사람들이 絶句를 씀에는 많이들 拗絶에 의거하여 平仄을 律에 맞게 한다. 그러므로 今絶이라 한다.
지금 五言絶句의 平仄 定式을 가지고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一. 仄起格平聲韻定式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韻,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叶
(首句에 韻을 쓰면 응당 仄仄仄平平韻이 되어야 한다.)
二. 平起格平聲韻定式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韻,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叶,
(首句에 韻을 쓰면 응당 平平仄仄平韻이 되어야 한다.)
三. 仄起格仄聲韻定式
仄仄平平仄韻, 平平平仄仄叶, 平平仄仄平 仄仄平平仄叶
四. 平起格仄聲韻定式
平平平仄仄韻, 仄仄平平仄叶, 仄仄仄平平, 平平平仄仄叶
적색 표시의 平仄은 평측 어느 것으로도 混用될 수 있음을 表示하였다. 通常 絶句를 씀에는 平聲韻이 많고 仄聲韻이 적다. 그러므로 第一 · 第二의 定式이 常用되는 것이니 처음 詩를 배우는 者는 마땅히 익히 기억해야 한다. 이 밖에 絶句의 用韻(押韻)은 律詩의 用韻과 같아서, 다만 한 韻안의 글자에 限하고 通押의 現象은 있을 수 없다.
絶句의 作法은 起·承·轉·合(結)의 方式을 採用하여 지극히 분명하다. 絶句는 모두 4句인데, 首句는 起가 되어 혹 比興을 일으키고 혹은 일을 敍述하거나 景을 써서 일으켜 모두 詩 題目에 들어맞게 한다. 次句는 承이 되는데 首句의 뜻을 잇는다. 第三句는 轉이 되는데 반드시 바꾸어 靈活(灵活[línghuó]융통성이 있다. 원활하다.)함을 얻어야 비로소 韻致를 가지게 된다. 第四句는 合이 되는데 全面을 거두어 맺어 딱 잘라 그친다. 全詩에서 驚語는 항상 3 ·4句 가운데 있다. 意象과 形象의 결합을 만들 뿐만 아니라 情과 景의 交融하는 境界에 다다라야 한다.
元나라 楊載는 ≪詩法家數≫ 가운데에서 絶句의 作法을 論하였는데 참고할 만하다. 그는 말하였다.
“구부러지고 돌아오며 거친 것을 깎고 간단한데 나아가고자 하여 句는 끊어져도 뜻은 끊이지 않는다. 많이들 第三句로 主를 삼고 第四句는 이를 發한다. 實接과 虛接이 있고, 承接하는 사이에 열고 닫음이 相關하며, 反과 情이 서로 의지하고, 順과 逆이 應하고, 宮과 商이 서로 어울린다. 대체로 起·承 두 句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평이하게 바로 서술하여 일으킴이 아름답게 되니 조용히 이를 잇는 것이 옳다. 구부러지고 변화하는 것 같은 노력에 이르러서는 전체가 제3구에 있으니, 만약 여기에서 轉變이 좋게 되면 제4句는 마치 順流의 배와 같아진다.”
이러므로 唐人 絶句 가운데 千古의 絶唱으로 전해오는 것은 3·4 兩句에 있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孟浩然의 <春曉>에 “‘夜來風雨聲 落花知多少’와 李商隱의 <登樂遊原>에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과 韋應物의 <滁州西澗>에 ‘春湖帶雨晩來急 野渡無人舟子橫’그리고 王維의 <渭城曲>에 ‘勸君更盡一杯酒 西出兩關無故人’등 무릇 이러한 종류는 다 枚擧(매거)할 수가 없다. 다만 우리들은 더 많이 諷誦하여 곧 그 가운데의 三味를 깨닫는 데 어렵지 않아야 한다.
이 밖에, 前人들이 絶句는 律詩 가운데의 4句를 截取(절취)하여 만들었다고 말하는 데, 정히 이로서 絶句의 句法 組織을 설명할 수 있다. 만약 律詩의 兩聯을 截取하면, 곧 앞 兩句는 풀어헤쳐지고(行散) 뒤 兩句는 對仗의 형상을 이루니 孟浩然의 <宿健德江 >이 곧 이것이다. 만약 律詩의 가운데와 뒤의 兩聯을 截取한다면, 앞 兩句가 對仗이고 뒤 兩句는 行散의 현상을 이루니 杜甫의 <八陣圖>가 곧 이렇다. 만약 律詩의 中間 兩聯을 截取한다면, 前後 兩句가 다 行散의 현상을 이루니 劉長卿의 <送上人>이 곧 이렇다. 이상 네 가지 현상의 絶句가 가지는 句法을 포괄하니 全人들의 작품에서 본다면 역시 四句가 行散하고 對仗하지 않은 것이 많다. 이와 같이 자유롭게 달릴 수 있어 神味가 매우 만족스럽게 된다.
그 다음 絶句 가운데의 拗救의 방법에 관해서는 律詩와 서로 같다. 이른바 ‘拗救’란 定式上의 글자에 있어서 꼭 平聲字를 놓아야 할 곳에 仄聲을 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래의 仄字를 놓을 곳에 平聲을 놓아 이를 拗救한다. 반대의 경우 上面에 仄을 놓을 곳에 平聲을 썼다면 그렇게 下面의 平을 놓을 곳에 仄聲을 써서 이를 補救한다. 만약 拗인데도 救하지 않는다면 곧 不合律이다. 지금 絶句 가운데의 拗救의 現象을 가지고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單拗
單拗는 本句 自救이다. 발생하는 곳은 五言出句의 第三字와 七言出句의 第五字이다. 이는 본래 平’이라야 맞는데 ‘仄’을 써서 곧 律에 合하지 못하고 拗가 되었다. 그러므로 五言에 있어서는 同句의 第四字, 七言에 있어서는 第六字가 본래 ‘仄’이라야 맞지만 곧 平聲으로 고쳐서 위의 字를 구한다. 이러한 平仄互換의 方法이 곧 單拗이다. 過를 救한한 뒤에는 그대로 律에 맞는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移舟泊(仄)煙(平)渚 日暮客愁新<孟浩然의 (宿健德江)> [○○●○●̌/ ●●●○○]
正是江南好(仄)風(平)景 落花時節又逢君<杜甫의 (江南逢李龜年)> [○●○○●○●/ ●○●●●○○]
※ ○○●○●/̌ ●●●○○의 형식은 원래 [○○○●●̌/ ●●●○○]이, 그리고
○●○○●○●/ ●○●●●○○은 원래 [○●○○○●●/ ●○●●●○○]이 합률적인 定式이다.
그런데 오언에서의 제3~5字, 칠언에서의 제5~7字의 평측 ‘○●●’이 ‘●○●’으로 바뀌는 것은 본래의 평측배치에 어긋난다. 즉 평측의 원칙인 ‘二四不同(제2자와 제4자의 평측은 같지 않다)’, ‘二六對(제2자와 제6자의 평측은 같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예로부터 이 방법만은 예외로 인정되어왔다. 일명 單拗는 ‘挾平格(협평격)’으로도 불리는데, 평성이 측성사이에 끼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예는 杜甫의 시에서 자주 나온다.
本句自救(본구자구)는 글자 그대로 본래의 句 즉 拗가 발생한 句에서 스스로 拗를 救하는 것으로 바꾸어 말하면 그 句가 아닌 다른 句에서 拗를 救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본구자구에 상대가 되는 말은 對句相救이다.
.
2. 雙拗
雙拗는 곧 對句로 서로 救하는 것이다. 무릇 五言 出句의 第二字와 第四字를 모두 仄聲으로 쓰거나, 七言의 出句 第四字와 第六字를 모두 仄聲으로 써서 곧 律에 不合하여 拗가 되었다면, 五言 對句의 第三字, 七言 對句의 第五字를 반드시 平聲을 써서 上句를 救한다. 이렇게 對句가 出句를 救하는 方法이 곧 雙拗이다. 過를 救한 後에는 그대로 合律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이다.
向晩(仄)意不(仄)適 驅車登(平)占原 <李商隱 (登樂遊原)> [●●●●●/ ○○○●○]
南朝四百(仄)八十(仄)寺 多少樓臺煙(仄)雨中 <杜牧 (江南春截句)> [○○●●●●● ○●○○○●○]
※ 出句의 제2자와 제4자를 仄聲(●)으로 썼기 때문에 다섯 자 모두가 仄聲(●●●●●)으로 되었거나 혹은 “●●○●●” “○●●●●” 등 형식의 拗句가 되었을 때 對句의 제3자는 반드시 平聲(○)으로써 句를 정돈해서 救한다. 칠언의 경우라면 출구 제4자, 6자 兩字가 모두 仄(●)이면 對句의 제5자는 반드시 平(○)으로 해야만 하는 것으로서 作詩하는 者가 비교적 적을 뿐 이 역시 單拗와 마찬가지로 기본 정신은 훼손된 平(○)을 회복하는 데 있다. ≪한시작법의 정석(하영섭,황필홍 저≫
★ 측기식이므로 제4자는 필히 평성이 되어야하는데 측성이 된 상황 | 五言仄起格平聲韻定式 |
向晩意不適(향만의부적)●●●●● : 날은 저무는데 기분이 울적하여 驅車登古原(구거등고원)○○○●◎ : 수레 몰고 높은 언덕에 올라본다. 夕陽無限好(석양무한호)●○○●● : 석양은 한없이 좋기만 한데 只是近黃昏(지시근황혼)●●●○◎ : 다만 아쉽나니 황혼이 가까워라 | ●●○○●(a측두측각) ○○●●◎ (B평두평각) ○○○●●(b평두측각) ●●●○◎(A 측두평각) |
★ 측기식이므로 제6자는 필히 평성이 되어야하는데 측성이 된 상황 | 七言仄起格平聲韻定式 |
千里鶯啼綠映紅(○●○○●●◎)천리에 꾀꼬리 울고 꽃 붉게 피었는데 水村山郭酒旗風(●○○●●○◎)강마을 산 밑 술집 깃발 바람에 펄럭이네. 南朝四百八十寺(○○●●●●●)남조의 사백 팔십 사찰 多少樓臺烟雨中(○●○○○●◎)얼마나 많은 누대들 이슬비에 젖을까 | ●●○○●●◎(B평두평각) ○○●●●○◎(A측두평각) ○○●●○○●(a측두측각) ●●○○●●◎(B평두평각) |
3. 孤平拗救
孤平拗救 또한(一種의) 對句相救이다. 出句 第三字는 본래 平인데 仄을 쓰면 孤平의 현상을 이룬다. 그러면 對句 第三字는 반드시 平을 써서 이를 구해야 한다. 七言이면 제5자에 있다. 前人들은 이러한 要求의 현상에 대해서도 또한 雙拗라고 불렀다. 그러나 제2종(雙拗)와 혼동되기 쉬우므로 구별하기 위해, 현재는 그것들을 가지고 孤平 拗救라고 부른다. 過를 救한 뒤에는 그대로 合律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但見淚(仄)痕濕 不知心(平)恨誰 <李白 (怨情)> [●●●○● / ●○○●◎]
兒童相見不(仄)相識 笑問客從何(平)處來 <賀知章 (回鄕偶書)> [○○○●●○● / ●●●○○●◎]
詩 가운데 出句의 ‘痕’과 ‘相’은 孤平을 범했다. 곧 ‘淚’와 ‘不’은 본래 平을 써야 하나 仄을 썼으니 이것이 곧 拗救라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對句의 ‘心’과 ‘何’에서 平聲을 사용해 救하였다.
4. 失黏과 失對
이것은 또 拗黏과 拗對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른바 ‘對’란, 곧 每句의 제2자와 제4자의 평측은 반드시 上句의제2자, 제4자와 相反되는 것이다. 소위 ‘黏’이라 하는 것은, 곧 每句의 제2자, 제4자의 平仄이 반드시 上句의 제2자, 제4자와 서로 같은 것이다. 七言에서는 제6자까지도 확대되는데, 만약 定式대로가 아니면 곧 拗이다. 무릇 平仄이 고르지 못한 것을 ‘失黏’이라 하는데, 또한 失嚴‘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혹 ’折腰體‘라고도 한다. 盛唐이전에는 詩人들이 黏對는 별로 충분히 강구하지 않고, 보통 出句의 平仄을 對句의 平仄과 互換하는 것으로 또한 合律이라 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後人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失黏, 失對라고 일컬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春眠(平)不覺(仄)曉 處處(仄)聞啼(平)鳥 夜來(平)風雨(仄)聲 花落(仄)知多(平)少 <孟浩然 (春曉)>
渭城(平)朝雨(仄)浥輕(平)塵 客舍(仄)靑靑(平)柳色(仄)新 勸君(平)更盡(仄)一杯(平)酒
西出(仄)陽關(平)無故(仄)人. <王維 (渭城曲)>
|
| 春眠不覺曉 | ○○●●● |
反 |
| ||
處處聞啼鳥 | ●●●○● | ||
|
| ||
反 |
| ||
夜來風雨聲 | ●○○●○ | ||
|
| ||
反 |
| ||
花落知多少 | ○●○○● | ||
|
|
<춘효>
|
| 渭城朝雨浥輕塵 | ●○○●●○○ |
反 |
| ||
客舍靑靑柳色新 | ●●○○●●○ | ||
|
| ||
反 |
| ||
勸君更盡一杯酒 | ●○●●●○● | ||
|
| ||
反 |
| ||
西出陽關無故人 | ○●○○○●○ | ||
|
|
<위성곡>
|
| 春眠不覺曉 | ○○●●● |
反 |
| ||
處處聞啼鳥 | ●●●○● | ||
|
| ||
反 |
| ||
夜來風雨聲 | ●○○●○ | ||
|
| ||
反 |
| ||
花落知多少 | ○●○○● | ||
|
|
<춘효>
|
| 渭城朝雨浥輕塵 | ●○○●●○○ |
反 |
| ||
客舍靑靑柳色新 | ●●○○●●○ | ||
|
| ||
反 |
| ||
勸君更盡一杯酒 | ●○●●●○● | ||
|
| ||
反 |
| ||
西出陽關無故人 | ○●○○○●○ | ||
|
|
<위성곡>
<4句는 3句와 반대로 ○, ● 으로>.................... <4句는 3句와 반대로 ○,●,○ 으로>
되어야 合律이 된다.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노곤한 봄잠에 동트는 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여기 저기 새 우는 소리로다.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지난 밤의 비바람 소리에
花落知多少[화낙지다소] 꽃잎 떨어짐이 그 얼마리오. <춘효>
渭城朝雨浥輕塵[위성조우읍경진] 위성 땅, 아침 비가 흙먼지를 적시니
客舍靑靑柳色新[객사청청류색신] 여관집 둘레 푸른 버들 빛 더욱 산뜻해라.
勸君更盡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에 권하노니 다시 한 잔의 술을 들라.
西出陽關無故人[서출양관무고인]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친구 없으리니<위성곡>
이상의 두 수는, 제3, 제4 兩句의 平仄互換을 예로 들 것 같으면 곧 定式의 平仄에 合한다. 그래서 唐나라 사람 중에는 이러한 현상을 律格에 合하지 않는다고 보지 않았다. 그러나 후인들은 이런 호환의 현상을 失黏, 失對라고 하였다. [邱燮友 著 ·安秉熱 역, ≪한역 당시삼백수≫]
<2016. 09. 12. 孤松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