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 2012-10-06
철없이 벽에도, 남의 가슴에도
숱한 못을 박아놓았다
부모님, 형제, 친구, 제자, 아내, 자식들 가슴에
알게 모르게 박아 놓은 못
죽기 전에 내 손으로 그것을 뽑아 버려야 할 텐데
부모님은 이미 먼 길 떠나셨고
아내는 병이 들었고
형제는 절반이 이승을 떠났고
자식들은 다 커 버렸다
지금도 그대들 가슴속 어딘가 박혀 있을 못을
무엇으로 뽑아내나
뉘우침이 못이 되어
내 가슴 깊이 박힌다
- 정재호 ‘못’
시인의 독백은 쉽고도 깊다.
대구 문단의 원로 정재호 시인의 ‘못’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일상의 사물을 소재로 삶의 무게와 진실을 통찰하게 해준다. 잔재주와 기교가 아니라 진정성과 연륜을 바탕으로 공감을 길어 올리는 작품이다.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중앙 문단에 곁눈질하지 않고 40여 년을 묵묵히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올해 그가 펴낸 시집 ‘그 말 한마디’는 시로 알기 쉽게 풀어쓴 인생론 같다. 소박하고 간결한 언어로 삶의 지혜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예술은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하늘 아래 없던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일보다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것, 무심코 지나쳐버린 것에서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건축용 재료로 사용되는 못도 예술가의 손길을 거치면 놀라운 작품으로 변신한다. 2003년부터 못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중견조각가 이재효 씨는 상처를 주고받는 운명적 관계로 고착화된 못과 나무의 만남을 다른 차원으로 접근했다. 나무에 수많은 쇠못을 박고 구부린 뒤, 금속성 못의 속살이 반짝반짝 빛날 때까지 공들여 갈아내 작품을 완성한다. 통상 못은 나무 속에 자기 몸을 숨기고 있지만, 그의 작품에선 존재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구불구불한 유기적 형태의 못들이 한데 모여 숲을 이루고 기하학적 조형물로 탄생한다. 나무에 기대어 못은 눈부신 군무를 펼치고 나무도 못도 서로 돕는 관계로 거듭난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못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관점은 신선하다. 지금까지 남이 내게 박은 못만 쳐다보며 앙앙불락하느라, 정작 다른 사람에게 대못 박은 일은 까맣게 잊고 산지도 모르겠다. 나 때문에 생겨난 못이 검게 녹슬도록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면, 뒤늦게나마 뉘우침의 못이라도 한번쯤 돌아보는 것이 도리 아닐까 싶다.
고미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