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는 '소금물 분무기'는 코로나 공포가 낳은 괴물이었다
정성원 입력 2020.03.18. 05:31
전통방식·민간요법 기승..불신사회 일조하기도
사실 바로잡기 및 정부·전문가 공신력 회복해야
[서울=뉴시스] 정성원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 47명이 발생한 경기 성남 소재 은혜의 강 교회에서 코로나19 예방을 목적으로 '소금물 분무기'라는 잘못된 민간요법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허위정보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인포데믹'(정보감염증·infodemic)으로, 이처럼 잘못된 정보로 인해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포데믹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나 신념에 기대면서 발생한다고 했다.
김우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8일 "코로나19가 치료제와 백신 부재로 공포감이 커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지처를 찾게 된다"며 "역사적으로도 신종 감염병 유행 시엔 잘못된 정보가 퍼졌다"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에 의존하게 된다"며 "그중 하나가 전통적 방식, 민간 대증요법 등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접 체험과 편향으로 전파되는 온라인 정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온라인 공간에선 불특정 다수가 정보를 만들고 의견을 조합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가 재창출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했거나, 자신이 그렇게 믿고 싶은 정보가 나오면 이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보들은 또 여러 과정을 통해 온라인 상으로 전달된다. 또 자신이 믿는 사람이 언급했다면, 이를 그대로 믿고, 다른 곳으로 전달하면서 정보는 계속 퍼져나간다.
이동귀 교수는 "요즘 트렌드 중 하나는 직접 체험인데,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이 경험한 것, 가까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듣게 된다"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진위 파악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나오는 익숙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전파된다"고 말했다.
면역력에 좋다는 마늘과 양파를 섭취하면 코로나19를 예방 또는 치료할 수 있다는 정보가 인터넷상에 돌았다. 잘못된 정보는 군을 움직이기까지 했다.
지난 1월30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강원도 육군 모사단에서 사단장 지시사항으로 예하부대 실내에 양파를 '제수용 과일'처럼 잘라 실내에 비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이 소식통은 해당 부대 사단장이 양파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보고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기관이나 단체를 사칭한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 퍼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믿을 만한 사람이나 단체의 이름을 빌려 정보가 전달되는 경우다.
지난달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한의사협회(의협) 권고사항'이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잘못된 내용의 코로나19 정보가 퍼져 의협이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당시 SNS에 퍼졌던 가짜 의협 권고사항에는 "뜨거운 물을 자주 마시고 해를 쬐면 예방이 된다", "콧물이나 객담이 있는 감기나 폐렴은 코로나19가 아니다", "바이러스 크기가 큰 편이라 보통 마스크로 걸러진다" 등의 잘못된 내용이 들어있었다.
'서울의대 졸업생 단톡방'에 올라왔다는 글도 SNS를 통해 확산된 바 있다. 해당 글에선 소염제, 항생제 등을 스스로 준비하고, 정부 방역과 보건정책을 믿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 글에 대해 서울의대 동문회 측은 "동문회 공식 입장이 아니며, 이 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지난 4일 이 글의 출처가 확실하지 않고, 사실과 다른 정보를 담고 있어 게시물 삭제 및 접속차단 등 시정요구를 결정했다.
◇미지의 감염병에 더 강력해지는 옛 방식과 확증편향
전문가들은 잘못된 정보를 믿는 행동에 대해 신종 감염병 전파라는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성향이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김우주 교수는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지하고 싶은 곳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당시에도 바셀린을 바르면 된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통해 의지처를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동귀 교수는 "불확실한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에 의존하게 된다"며 "그중 하나가 전통적인 방식이나 민간 대증요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예방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서 옛날 대증요법에서 균을 사멸시키려면 소금을 뿌리면 된다는 식의 대증요법에 의지하게 된 것"이라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경험 또는 민간 대증요법, 미신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우리사회에 만연한 '불신 풍조'가 잘못된 정보를 더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동귀 교수는 "가짜뉴스, 허위정보가 많이 퍼져 있어 불신 풍조가 많고, 전문가가 아닌 개개인이 일일이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며 "정부, 전문가의 입장에도 이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 진위 파악이 힘들기 때문에 주변인들이 실제 경험한 것, 평소 신념에 따라 '확증편향'이 일어난다"며 "소금물에 닦으면 염증이 줄어든다는 확증편향이 발동되고, 여러 사람이 이에 따르면서 집단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즉, 정보의 진위와 상관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이 심화하는 것이다.
◇전문가 "공신력 회복 위해 노력해야…사실 바로잡기에 적극 대응"
전문가들은 불확실한 상황, 불신사회 풍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시민단체의 공신력을 회복하는 한편, 가짜 정보를 바로잡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귀 교수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감염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팩트체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공신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질병관리본부, 의사협회 등에서 팩트체크를 철저하게 해주는 한편 공신력 회복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며 "개인과 시민단체도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너무 쉽게 믿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우주 교수는 "대증요법 등도 넓은 의미에서 가짜뉴스에 포함시켜서 정부와 방역당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식품과 의약품 등을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스스로 자기 분야에서 예방책을 스스로 찾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며 "총력 대응을 위해선 다양한 노력이 여러 방면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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