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모 씨의 ‘달빛 사랑’.
퇴근 길 버스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답은 뜻밖에 ‘비자금’이 아닌 ‘외로움’이란다. 남자만 그럴까.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선 여주인공의 독설이 쓸쓸함을 표현하는 몸부림이란 사실을 곱씹게 한다. 일상의 동행이 있든 없든 간에 인간은 삶의 공허함을 벗어날 수 없는 듯하다.
그 존재의 허전함을 평소 느끼지 못하던 사람도 한 해의 마지막 장을 남겨놓은 달력을 넘길 때 문득 착잡해진다. 달랑 한 장 남은 탁상달력에 적힌 몇 건의 송년회 일정들. 삶이 쏜살같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일깨운다. 2012년을 시작하면서 뭔가 해보겠다고 다짐한 것이 어제 같은데 그다지 성과도 없이 올해 역시 그냥 보냈구나 하는 아쉬움과 미련만 쌓여간다. 연말을 맞아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 5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초에 세운 목표 달성률이 평균 32.4%로 집계됐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이유로는 게으름과 나태함(55.2%)이 가장 많았다. 꼭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것도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12월이 열리면 으레 마음으로 반성문을 써보곤 한다. 해마다 되풀이하는 연례행사인데도 가슴 한편 쓰려옴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도시에선 휘황찬란한 인공 불빛이 사람과 별 사이의 스킨십을 가로막는다. 화가 강찬모 씨는 아무 걸림돌 없는 별들의 합창을 히말라야 설산에서 마주쳤다. 그는 “그 별들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멍석 깔고 누워서 보던 그때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을 돌려주었다”고 말한다. 그 추억과 함께 캔버스에 채집된 형형색색 별들이 장엄한 우주 교향곡을 들려준다. 오색찬란한 별을 보며, 외롭고 힘든 오늘이 바로 별을 볼 수 있고 별을 낳을 수 있는 눈부신 순간임을 기억하기를.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