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대마도(對馬島)의 이야기

[스크랩] 일본은 대마도를 반환하라 ~~ 대마도 반환운동본부 발대식 가져 / 대마도 반환 촉구 결의안 / 日 고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 땅” 반환 촉구 마땅

착한 인생 2019. 1. 15. 21:33


우리땅 대마도를 반환하라 - 스크렙| 자유 게시판

청추(아산) | 조회 539 |추천 2 | 2017.01.17. 02:09    


다른 카페에서 양해를 구하고 스크렙을 해왔습니다.

요즘은 정치적인 글과, 음모론 따위의 글이 안 올라와서 카페가 조용한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정自淨을 함과 동시에 끝도 없고, 별무의미한 일로 씨끄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이 카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아래 내용은 재차 상기하고자 해서 가져온 것으로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이 좁은 국토에서 좌,우니 진보,보수니 하면서 뜻있는 민초들의 가슴만 멍들게 하지말고,

밖으로 눈을 돌려서 대국적으로 보자는 뜻으로 가져왔습니다.


[스크랩] 우리땅 대마도를 반환하라 ~~|녹림거사님의 칼럼

청추靑秋 | 등급변경 | 조회 1 |추천 0 |2017.01.17. 01:57 http://cafe.daum.net/hhs3712/e6pI/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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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대마도

♣ 대마도(對馬島)를 반환하라 ♣ 1948년 8월18일 대한민국을 건국한지 사흘만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가장먼저 역사적인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발표하고 외교체녈을 통해 정식으로 일본에 통보 했어요 우리 근대사에서 최초로 “대마도반환”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바로 이승만 초대대통령 이었지요 “일본은 대마도를 한국에 즉각 반환해야 한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를 섬긴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때 일본이 무력강점했지만 의병들이 일어나 이를 격퇴했고 지금도 도처에 그 전적비가 남아있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적인 경계선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구한말에 대마도를 강점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는 무조건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지체 없이 조선의땅 대마도를 한국에 돌려 줄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 문서를 받아든 일본 외무성은 발칵 뒤집혔지요 그러면서 일본은 실효적 지배를 앞세우고 항의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작심한듯 입을 꾹 다물고 이번에는 한술 더 떠 1948년 9월 내무부를 시켜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어요 대마도는 정식적으로 우리의 영토임을 천명한 것이지요 정말 통쾌한 일이 아닐수 없어요 이때 국회에서도 ‘대마도반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 시켰고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법적조치 까지 취하면서 1949년 연두기자회견과 연말기자회견을 비롯하여 수시로 “대마도 내놔라”고 요구한것이 무려 60여차례나 이어졌지요 그러자 당황한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회피하다가 북한의 6.25 남침전쟁이 일어나자 쾌재를 불렀어요 “김일성이 일본을 살렸다”며 환호성을 질렀다고 하는군요 6.25 전쟁으로 인해 일본은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요구"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전쟁특수로 경제발전에 발판까지 마련하게 되었지요 일본은 김일성과 소련이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소련 공산당 앞잡이 김일성 이야말로 동족상쟁의 원흉(元兇)이기도 하지만 대마도 반환의 '원흉'이기도 하지요 그뒤 1952년 1월18일 이승만은 ‘평화선’을 선포했어요 6.25 전쟁도중 독도를 괴롭히는 일본에 대하여 ‘독도와 이어도’를 주권수역 울타리를 처서 대한민국 영토임을 선포하며 이 지역을 확고하게 확보했지요 이때 대마도까지 평화선 안에 넣고 싶었지만 그때는 6.25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자칫 잘못하면 일본과 "대마도 전쟁"도 불사해야만 하는 처지라 한발 물러섯던 것이지요 국제법전문가(프린스턴대 박사)인 이승만이 ‘실효지배’의 참뜻을 모르지 않았지요 대마도를 도둑맞은 고종때부터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평생을 일본침탈자들과 싸우다가 조국은 해방되었으나 대마도는 식민지 그대로 였으므로 작심하고 이를 되찾으려 했던 것이지요 다시말해 6.25전쟁이 그의 숙원을 망쳐버리고 말았어요 부산에서 49.5㎞ 큐슈에서 147㎞인 대마도 !! 거리로만 봐서도 당연히 우리 땅인 대마도 !! 1592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대마도주(對馬島主) 소요시시게(宗義調)를 앞세워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 7년동안 싸운 임진왜란 이지요 일본의 강압에 굴복하여 본의 아니게 조선침공의 용역을 맡았던 대마도주는 임진왜란 전쟁이 끝나자 일본으로 부터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하였고 조선으로 부터도 엄벌을 받아 굶어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조선이 곡식과 면포 공급을 재개하여 살아난 곳이지요 삼국시대엔 각국세력이 혼재했으나 통일신라때부터 고려와 조선 말까지 대마도는 계림(鷄林)의 관할도서였고 고려때는 목(牧)이었으며 동래부(東萊府)부속도서 로서 경상도 관찰사의 관할안에 있었지요 한중일(韓中日) 3국의 사서(史書)들과 지도들 또 구미유럽의 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땅,코리아 땅이라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요 조선왕조 5백년간 대마도주는 대대로 조선의 관직을 받았지요 한 예로 세조가 대마도주에게 내린 직명은 "숭정대부 판중추원사 대마주 병마도절제사" (崇政大夫判中樞院事對馬主兵馬都節制使)였어요 조선왕조의 대마도 인식은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지요 성종, 연산, 광해, 영조, 순조등이 내린 ‘대마도 교지’를 비롯 빈번한 교류기록에 의하면 대마도는 조선의속방, 군신지간(君臣之間)이란 표현은 한곁 같았어요 1750년 영조때<해동지도>의 <대동총도(大東總圖)>설명문에는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라는 말은 수천년 내려오는 우리의 국토인식과 주권의식의 상징이었지요 또한 해좌전도(海左全圖) 팔도천하지도(八道天下地圖) 동국조선총도(東國朝鮮總圖) 조선방역지도, 동국도, 천하대총일람지도, 조선전도, 강원도도(江原道圖) 경상도도(慶尙道圖)등등 대마도가 조선땅이라는것은 너무도 많아요 실증사학자 안정복(安鼎福)의 동사외전(東史外傳), 동사강목(東史綱目)등에도 분명히 기록 되어 있고 특히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비어고(備禦考)에서는 대마도현장 사료 및 주민의 언어,복식, 풍습등을 종합하여 '일본 왜'와 다른 대마 조선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징을 상세히 고증해 놓았지요 이렇듯 명명백백한 조선땅임이 분명함에도 일본인들은 대륙을 향한 야욕으로 1868년 명치유신 혁명에 성공하자 일본에 불어닥친 정한론(征韓論)의 열풍은 대마도부터 탐내기 시작 했지요 구한말 약해질대로 약해진 조선의 혼란기를 틈탄 일본은 남의땅 빼앗아부터 시작 했어요 미국 페리제독의 흑선(黑船) 공격에 놀라 막부(幕府)를 무너뜨린 사무라이들은 그때부터 조선식민화로 치달았지요 우선 대마도를 이즈하라번(嚴原藩)으로 만들었다가 1877년 나가사키현(長崎縣)에 편입시켰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진행한 것이<지도 변조> 절도 사기꾼 행각을 자행 했지요 그러나 조선은 대마도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어요 그저 왜구의 근거지 역할만 해주지 않으면 좋다는 정도였지요 그러나 임진왜란이 대마도의 운명을 갈라놓았어요 양다리를 걸쳤던 대마도주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강압에 의해 일본화를 지향했고 임란 직후인 17세기 초 일본의 막번체제에 편입했지요 조선전기 때만 해도 조선의 신하임을 당당히 밝혔던 대마도((對馬島)도주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지요 물론 대마도가 제주도나 거제도 같은 우리 땅은 아니었어요 이승만 대통령도 대마도가 우리에 조공을 바치던 땅이라고만 말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태종때 대마도가 일본 땅도 아니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런 점에서 15세기 초 태종 이방원의 대마도 인식과 20세기 중반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인식은 일맥상통함을 알수 있어요 지금 대마도는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땅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독도를 실효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근거가 미약하지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에 비하면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많은 근거를 가지고 있어요 그뒤 3년간의 6.25 전쟁으로 인해 국토는 황폐화 되었고 국가재건과 경제개발을 위하여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는 대마도 반환을 요구할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초들은 죽지 않았어요 2005년 3월 18일 옛 마산시의회(현 창원시의회)는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에서 우리의 독도를 '다케시마의 날'로 제정하자 이에 맞서 마산시 의회는 "대마도의 날"을 제정하였지요 해마다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제정한 이유는 대마도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의 땅이기 때문이고 조선 초기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날이 6월 19일이기 때문에 이를 기려 "대마도의 날"로 정했다고 했어요 정말 장한 일이지요 그러자 2008년 7월 3일 일본 NHK방송은 "영토에 대한 특집"을 기획하여 1948년과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2년에 걸쳐 대마도가 한국령이라고 주장을 펼쳤지만 일본 정부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시네마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한국의 마산시 의회도 "대마도의 날"을 제정 했다며 다시 대마도가 수면위로 부상하지나 않는것인지 우려석인 보도를 했어요 그러면서 한국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대마도 반환을 요구할때 일본정부는 커다란 위기감을 느꼈으며 “만일 유엔이 승인하면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며 대응책을 모색한 외무성 극비문서가 있었다고 방송했지요 그 뒤 대마도에 대한 문제가 잠잠 하다가 2010년 9월 28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야 37명 의원들이 대마도 포럼을 창립하였어요 당시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은 이날 포럼 창립식에서 "대마도는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으로 우리 영토임이 분명하다"며 "대마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초대 제헌국회에서의 영유권 주장과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의 반환 요구 이후로 사실상 전무한 상태로 현재까지 이르러왔다"고 지적하였고 여야 의원들은 일본이 불법으로 강점하고 있는 대마도를 조속히 반환해야 한다고 촉구 하였지요 또한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한국에 가깝고 대마도 주민의 혈통조사에서도 한국 혈통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대마도 영유권 주장의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는 내용을 설립 목적에 분명히 밝혔지요 그러자 2013년 3월 22일에는 의정부시의회가 대마도 반환을 촉구하는 한편 대한민국정부차원의 반환 촉구를 결의하기도 하였어요 그러다보니 일본의 한 언론에서 "한국이 쓰시마 섬을 넘본다"라는 기사를 쓰면서 영토분쟁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 했으며 또 산케이 신문은 "쓰시마가 위험하다"라는 쓰시마 위기론을 기사화 하기도 하였지요 성동격서(聲東擊西)라 할까요? 동쪽에서 소리지르고 서쪽을 친다는 병법인데 일본이 이 병법을 쓰고 있다 하네요 대마도를 잃을까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거지요 한국이 대마도에 눈을 돌리면 돌려줄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하는군요 앞으로 2편에서는 "대마도(對馬島)반환을 위한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논해보고 3편에서는 "부산에서 바라본 우리땅 대마도"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해요 그리고 4편에서는 "대마도의 아름다움" 을 찾아 보기로 하지요 그럼 2편에서 만나요 ~~



대마도를 반환하라 ~~| 자유게시판 - 주변 이야기


▲ 국보248호 <조선방역지도 朝鮮方域之圖> 현재 전해지는 조선 전기 국가제작지도로는 유일하다. ‘백두는 머리, 태백은 척추,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는 기록대로 당시 국토관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 ♣ 대마도(對馬島)를 반환하라 ♣ 1948년 8월18일 대한민국을 건국한지 사흘만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가장먼저 역사적인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발표했어요 우리 근대사에서 최초로 “대마도반환”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바로 이승만 초대대통령 이었지요 “일본은 대마도를 한국에 즉각 반환해야 한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를 섬긴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때 일본이 무력강점했지만 의병들이 일어나 이를 격퇴했고 지금도 도처에 그 전적비가 남아있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적인 경계선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구한말에 대마도를 강점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 점령한 영토는 무조건 반환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지체 없이 조선의땅 대마도를 한국에 돌려 줄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정말 통쾌한 일이 아닐수 없어요 이때 국회에서도 ‘대마도반환’ 결의안을 만들었고 이승만은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법적조치를 취하면서 수시로 “대마도 내놔라”고 요구한것이 6.25 전쟁 발발 전까지 무려 60여차례나 이어졌지요 당황한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회피하다가 북한의 6.25 남침전쟁이 일어나자 쾌재를 불렀지요 “ 김일성이 일본을 살려준다 ”며 환호성을 질렀다고 하는군요 이승만의 ‘대마도 요구’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전쟁특수로 경제발전에 발판까지 마련하게 되었지요 김일성과 소련이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소련 공산당 앞잡이 김일성 이야말로 ‘대마도 원흉’이라 할만하지요 그뒤 1952년 1월18일 이승만은 ‘평화선’을 선포했어요 6.25 전쟁도중 독도를 괴롭히는 일본에 대하여 ‘독도와 이어도’를 주권수역 울타리를 처서 대한민국 영토임을 선포하며 이 지역을 확보했지요 이때 대마도까지 평화선 안에 넣고 싶었지만 어쩔수가 없었어요 그때는 6.25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자칫 잘못하면 일본과의 대마도 전쟁도 불사해야만 하는 처지라 한발 물러선 것이지요 국제법전문가(프린스턴대 박사)인 이승만이 ‘실효지배’의 참뜻을 모르지 않았지요 대마도를 도둑맞은 고종 때부터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평생을 일본침탈자들과 싸우다가 조국은 해방되었으나 대마도는 식민지 그대로 였으니까요 다시말해 6.25전쟁이 그의 숙원을 망쳐버리고 말았어요 부산에서 49㎞ 큐슈에서 150㎞ 거리로만 봐도 우리 땅인 대마도 !! 1592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대마도주(對馬島主) 소요시시게(宗義調)를 앞세워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 7년동안 싸운 임진왜란 이지요 일본의 강압에 굴복하여 본의 아니게 조선침공의 용역을 맡았던 대마도는 전쟁이 끝나고 조선의 엄벌을 받아 굶어죽기 직전에 다시 조선이 곡식과 면포 공급을 재개하여 살아났어요 삼국시대엔 각국세력이 혼재했으나 통일신라때부터 고려와 조선 말까지 대마도는 <계림(鷄林)=신라 관할도서> <고려사 :고려의 목(牧)><동래부(東萊府) 부속도서>로서 경상도 관찰사의 관할이었지요 한중일(韓中日) 3국의 사서(史書)들과 지도들 또 구미유럽의 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땅 코리아 땅이라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요 조선왕조 5백년간 대마도주는 대대로 조선의 관직을 받았지요 한 예로 세조가 대마도주에게 내린 직명은 '숭정대부 판중추원사 대마주 병마도절제사' (崇政大夫判中樞院事對馬主兵馬都節制使)였어요 조선왕조의 대마도 인식은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지요 성종, 연산, 광해, 영조, 순조등이 내린 ‘대마도 교지’를 비롯 빈번한 교류기록에 의하면 <대마도는 조선의속방, 군신지간(君臣之間)>이란 표현은 한곁 같았지요 1750년 영조때<해동지도>의 <대동총도(大東總圖)>설명문에는 "백두산이 머리가 되고 태백산맥이 척추가 되며 영남의 대마도와 호남의 탐라를 양발로 삼는다"라는 말은 수천년 내려오는 우리의 국토인식과 주권의식의 상징이었지요 또한 해좌전도(海左全圖) 팔도천하지도(八道天下地圖) 동국조선총도(東國朝鮮總圖) 조선방역지도, 동국도, 천하대총일람지도, 조선전도, 강원도도(江原道圖) 경상도도(慶尙道圖)등등 대마도가 조선땅이라는것은 너무도 많아요 퇴계 이황(李晃)의 문서, 실증사학자 안정복(安鼎福)의 동사외전(東史外傳) 동사강목(東史綱目)은 물론 특히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비어고(備禦考)에서는 대마도현장 사료 및 주민의 언어 복식, 풍습등을 종합하여 '일본 왜'와 다른 대마 조선인의 문화인류학적 특징을 상세히 고증해 놓았지요 이렇듯 명명백백한 조선땅임에 변함이 없음에도 일본인들은 야만적인 야욕으로 1868년 명치유신 혁명에 성공하자 일본에 불어닥친 정한론(征韓論)의 열풍은 대마도부터 탐내기 시작 했지요 구한말 약해질대로 약해진 조선의 혼란기를 틈탄 일본은 남의땅 빼앗아먹기 수법부터 흉내내기 시작 했어요 미국 페리제독의 흑선(黑船) 공격에 놀라 막부(幕府)를 무너뜨린 사무라이들은 조선식민화로 치달았지요 우선 대마도를 이즈하라번(嚴原藩)으로 만들었다가 1877년 나가사키현(長崎縣)에 편입시켰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진행한 것이<지도 변조> 절도 사기꾼 행각을 자행 했지요 그러나 조선은 대마도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어요 그저 왜구의 근거지 역할만 해주지 않으면 좋다는 정도였지요 그러나 임진왜란이 대마도의 운명을 갈라놓았어요 양다리를 걸쳤던 대마도주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강압에 의해 일본화를 지향했고 임란 직후인 17세기 초 일본의 막번체제에 편입했어요 조선전기 때만 해도 조선의 신하임을 당당히 밝혔던 대마도((對馬島)도주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지요 물론 대마도가 제주도나 거제도 같은 우리 땅은 아니었어요 이승만 대통령도 대마도가 우리에 조공을 바치던 땅이라고만 말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태종때 대마도가 일본 땅도 아니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런 점에서 15세기 초 태종 이방원의 대마도 인식과 20세기 중반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인식은 일맥상통함을 알수 있어요 지금 대마도는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땅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독도를 실효 지배하는 것보다 훨씬 근거가 미약해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에 비하면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고 많은 근거도 가지고 있어요 해서 일본에게 다시금 말하고 싶은 것은 하늘이 알고 역사가 아는 독도를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오히려 대마도(對馬島)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친 우리 땅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그 땅을 무력 강점했지만 결사 항전한 (대마도) 의병들이 이를 격퇴했고 의병 전적비(戰蹟碑)가 대마도 도처에 있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 고로 우리 고유의 땅 독도는 물론이요 대마도((對馬島) 또한 우리땅임이 자명하거늘 어서 빨리 대한의 땅 대마도를 반환하라 !!! 2008년 7월 3일 일본 NHK방송은 1948년과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크게 두차례에 걸쳐 대마도가 한국령이라고 주장을 펼쳤지만 일본 정부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보도했어요 그러나 당시 일본정부는 커다란 위기감을 느꼈으며 “만일 유엔이 승인하면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며 대응책을 모색한 외무성 극비문서가 있다고 방송했지요 성동격서(聲東擊西)라 할까요? 동쪽에서 소리지르고 서쪽을 친다는 병법인데 일본이 이 병법을 쓰고 있다 하네요 대마도를 잃을까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거지요 한국이 대마도에 눈을 돌리면 돌려줄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하는군요


대마도를 반환하라 상식모음

2011. 7. 25. 21:50

복사 http://blog.naver.com/mcj228/13355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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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마도 반환하라고 日本에 수십 차례 요구한 바 있다.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3일 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을 열고, 대일관계에 관해 중대한 발언을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上島及下島 (상도와 하도)의 二島(두 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삼백 오십년 전 일본이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렇게 ‘대마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반발하였다. 이에 이 대통령은 동년 9월 9일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영유권을 재확인했다.

 

다음해인 1949년 1월 8일 연두 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래된 해상 경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 번 대마도 반환문제를 강력히 제기하였다. 또한 동 회견에서 “대일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起算)하여야 한다. 특히 대마도는 별개로 하여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대마도가 우리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350년 전 일본인들이 그 섬에 침입하여 왔고 도민들은 민병을 일으켜 일본인과 싸웠다.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일본인들이 뽑아다가 도쿄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비석도 찾아올 생각이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년 12월 31일 대통령 연말기자회견에서 거듭하여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역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력히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지브롤터 Gibraltar - 스페인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 지중해와 대서양의 입구에 있는 작은 지역 당연히 스페인 영역이라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영국령 식민지이다)

(식민지주의 Colonialism은 강대국의 논리로 약소국을 침탈하면서 시작하였고, 정치 경제적으로 행해왔던 악행은 설필로 표현할 수 없을 만치 유치한 구석도 많다)

 

이 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는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와 함께 한일회담 협상과 맞물리면서 60여 차례나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보도된 국내외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의 대마도를 반환 받는 것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중국 여론도 이 같은 주장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이를 지원하는 대규모 시위를 했던 사실 역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지난 2008년 이승만 대통령이 학부를 마쳤던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 정책 연수를 위해 1년간 머물렀다.

건국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지 워싱턴대에서 1907년 청년 이승만의 흔적을 찾던 김 대령은 우연히 조지워싱턴대 도서관에서 이승만의 영문 저서 ‘Japan Inside Out’을 발견하고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책의 내용 중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오래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있다.’라는 이 대통령의 언급을 발견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시절, 김 대령은 이 ‘한-일 간의 오래 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어디를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에 오른 뒤 기회만 주어지면 “대마도를 불법 점거한 일본은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수십 차례나 주장한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 년 간의 집요한 연구와 추적 끝에 김 대령은 이승만의 ‘대마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의 명백한 근거를 찾았고, 틈만 나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밝혀냈다.

 

김 대령은 지난 5월 11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의 제3회 '이승만 포럼'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그 명쾌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김 대령은 이 대통령이 주장했던 ‘오래된 해상경계는 대마도와 일본 본 섬 사이의 현해탄'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마도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가 된다.

 

(일본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한다)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냥 빼앗길 뻔했다)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93)는 1832년, '삼국접양지도'를 만든다. 이 지도의 해설서가 '삼국통람도설'이다. 그는 이 책에서 당시 일본과 그 주위 3 개국(조선, 류쿠국 오끼나와, 하이국 북해도)과 무인도였던 오가사와라(小笠原, 일본 남부 태평양 1,000km지점의 80여개 군도)제도에 대한 지도와 해설을 해놓았다.

대마도는 한국땅, 대마도를 반환하라3

좀지나가자 이웃추가 | 2015.11.1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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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래 우리 나라 땅인데,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으로부터 변경에 뛰놀기 시작하여...(중략)
-세종실록 1년 6월 9일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했으니, 본디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 다만 그 땅이 심히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는지라, 이러므로 왜인으로서 그 나라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다 와서, 함께 모여 살아 굴혈을 삼은 것이며, 때로는 도적질로 나서서 평민을 위협하고 노략질하여, ..(중략)
-세종실록 1년 7월 17일...

내가 생각하건대, 대마도는 바로 두지도(豆只島)이다. 김중곤(金中坤)의 노비 문기(奴婢文記)에 있기를, ‘두지(豆只)에 사는 사람이라.’ 하였으니, 대마도는 곧 우리 나라 지경인데, 왜인에게 무엇이 관계되랴.
-세종실록 23년 11월 21일

우의정 신개는 논의하기를,
“신의 뜻도 황희 등의 의논과 같사오나, 왜인이 고기잡기를 청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신이 망령되게 생각하기를, 대마도는 본시 우리 나라 땅이온데 고려의 말기에 기강(紀綱)이 크게 허물어져서 도적을 금하지 못하여 드디어 왜적의 웅거하는 바가 되었사온데...(중략)
-세종실록 23년 11월 22일

권선(勸善)이 또 아뢰기를,
“대내전 관반(館伴) 노라가도로(盧羅加都老)가 말하기를,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이므로, 대내전도 조선과 더불어 협공(夾攻)하여 대마도를 조선에 돌리고자 하였더니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의 대내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고 하였습니다.”
-세종실록 26년 4월 30일

대마도(對馬島) 한 섬[一島]도 옛날 문적에 우리 나라의 말 기르는[牧馬] 땅으로 실려 있고, 왜인도 또 본래 우리 나라의 섬이라고 일러 왔는데, 그러나 그 섬이 종말에는 도적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제 고초도(孤草島)도 아주 허가하고 돌아보지 아니한다면 뒷날에 대마도와 같이 될는지 어찌 알겠는가...(중략)
-세종실록 29년 5월 26일

[청로 이용웅 칼럼]우리의 땅이었던 일본 대마도(對馬島)의 어제와 오늘

기사입력 2018.09.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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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마도-전도(全圖).jpg
일본 대마도-전도(全圖)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최근 한 역사학회는 '대마도(對馬島)에 살아있는 환단고기의 숨결'이라는 주제로 역사 강좌를 개최했는데, 주제는 '임나는 대마도·쓰시마의 유래와 자연환경·대마도를 삼한이라고 기록한 이유'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사는 일본 대마도가 한반도의 ‘부속섬’이었다는 것이 <환단고기(桓檀古記)>에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계연수(桂延壽)가 편찬했다는 한국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책입니다. ‘임나(任那)’는 일본 기록에서는 낙동강 유역의 여러 가야국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나오고, 명칭은 광개토왕비문에 '임나가라(任那加羅)‘라고 보이는 것이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한 고지도(古地圖) 박물관 관장은 “과거 우리나라는 대마도를 점령하고, 수많은 군인들이 대마도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결국 대마도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대마도를 포기하게 되면서 우리 역사 속에서 대마도는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빼앗겨버리면 아무리 우리의 것이라 목소리를 높여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것은 우리가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 우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남한의 백과사전은 “쓰시마섬. 대한해협의 중간쯤에 위치한 일본의 섬으로 '대마도'라고도 부름. 섬의 인구는 약 34,000명 내외이며, 거리상으로는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 섬이다. 1418년(태종 18) 대마도에 흉년이 들자 왜구들은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명나라 해안으로 향하던 중 조선의 비인(庇仁)·해주(海州) 해안에 침입했다. 이에 1419년 6월 세종은 이종무에게 군사를 내어 왜구를 토벌할 것을 명했다. 이종무는 삼남(三南)의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으로 마산포(馬山浦)를 출발하여 대마도로 진격했다. 이 정벌을 통해 왜구의 배 127척을 빼앗아 불사르고 왜구를 소탕하는 전과를 올리고 한 달여 만에 철수했다. 쓰시마섬에 대한 정벌 혹은 토벌은 고려시대 창왕 때와 조선시대 태조 때에도 행해진 바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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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마도-TSUSHIMA DAE-A HOTEL (필자)

 

마산포(馬山浦)! 마산은 필자가 근무했던 경남대학교가 있는 고장입니다. ‘가고파’의 고향으로, 무학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합포만이 정겹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필자의 보금자리는 그 해안과 접해 있었는데, 마산항을 오가다 보면 ‘대마도 행 여객선’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필자는 일본을 자주 왕래하면서도 대마도가 일본 땅이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울 삼청동에 있는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부산 경남을 자주 오가게 되었는데, 친우와 제자들이 대마도 얘기를 가끔 꺼냈습니다. 결론적으로 ‘가볼만한 섬’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 살인더위를 겪으면서 문득 그 섬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대마도(TSUSHIMA)의 역사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였다는 사실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세종 원년(1419년) 조선 조정은 이종무(李從茂)를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로 삼아 대마도를 정벌했습니다. 그리고 세종 9년(1427) 7월17일 병조판서 조말생(趙末生/1370~1447) 명의로 항복하라는 문서를 보냈는데, 이 문서에는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鷄林-경주)에 예속된 곳이라 본디 우리 영토였습니다. 여러 문헌에도 그렇다고 되어 있다(對馬島 隸於慶尙道之鷄林 本是我國之地載在文籍昭然可考-대마도 예어 경상도지계림 본시아국지지재재문적소연가고)고 적고 있습니다.

 

일본은 대마도를 불법으로 병합한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이후 1909년 청나라와 소위 간도협약을 맺었는데, 일본이 만주 땅을 중국에 할애하는 대신 만주철도 부설권 등의 이권을 얻어내는 협약입니다. 그런데 대마도는 오키 섬보다 부산과 거리가 가까우며, 조선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는데 언젠가부터 일본인들이 무단점거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첫 대통령 이승만(李承晩/1875~1965)은 1948년 8월 18일 전격적으로 '대마도 반환요구'를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발칵 뒤집히며 반발했고, 이에 대해 일본 총리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이대통령의 요구를 막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맥아더는 이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전후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데 방해되는 행위로 간주하고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했습니다. 일본이 대한민국의 독도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인데, 독도 수호(守護)는 물론, 대마도 반환요구'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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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마도-조선국통신사지비(朝鮮國通信使之碑)

 

대마도는 남북으로 82km, 동서로 18km인 길쭉한 모습의 두 개 섬으로 되어 있고, 총면적은 714㎢에 이릅니다. 이 섬은 일본보다는 한국에 가깝습니다. 한국 남단에서는 53km, 일본 규슈(九州)에서는 147km 떨어져 있습니다. 대마도는 산림이 많다 보니 농사는 해안지대 일부에서만 가능해 식량의 자급자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서 어업을 주업으로 삼고, 잡은 어물을 배에 싣고 한반도로 가서 물물 교환하여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대마도 가는 뱃길은 멀지 않았습니다. 260년간 조선과 일본, 두 나라 교류에 가교역할을 했던 곳, 조선통신사가 떠오르는 곳, 그곳의 이즈하라항(嚴原港)에 도착하면, 조선통신사 교역 200주년 기념벽화를 보게 되고, 대마도 역사민속자료관&조선통신사의 비(碑)와 덕혜옹주 결혼 경축 기념비도 만나게 되고,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대마도의 북섬과 남섬을 이어주는 만관교(萬關橋)가 있는 미쓰시마를 거쳐 가미쓰시마와 히타카츠...마우다 해수욕장, 조선국 역관사 순난비, 슈시의 단풍길, 한국전망대도 보게 됩니다.

 

기후가 부산과 유사한 대마도는 절경(絶景)도 비경(秘境)도 없는 섬이지만 우리나라 서민들의 휴양 장소로는 제격입니다. 부산과 지척(咫尺)이고, 낚시와 등산하기가 좋은 곳입니다. 여객선 운행의 수준을 높이고 사계(四季)의 아름다움을 알린다면 많이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일본인들이 발을 들여놓을 자리 하나 없게 만든다면? 필자는 오는 시월부터 새로 재촬영하는 사이버강좌 <동북아의 역사와 문화>에서 일본 대마도를 강의할 것입니다. 이 과목을 수강하는 경남대, 경기대 등의 학생들에게도 적극 홍보할 것입니다. 우리의 땅이었던 일본 대마도(對馬島)를 실질적인 우리 땅처럼 만들 수도 있겠단 망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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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애국국민운동대연합,"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강력 촉구


안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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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국제 사기극 행사 다케시마날을 진행하는 일본이다"며"한.미.일 군사공조는 모순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독도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 

 

▲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국제 사기극 행사 다케시마날을 진행하는 일본이다"며"한.미.일 군사공조는 모순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그러면서,"간악한 일본의 음흉한 술수는 현재 진행형임에도 한마디 언급하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일본은 현재 군사 대국화를 향해 브레이크

 

오 대표는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영토 임에도 일본 국방백서와 외교청서 등 외교적으로도 사기극 홍보 책자 

 

▲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국제 사기극 행사 다케시마날을 진행하는 일본이다"며"한.미.일 군사공조는 모순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이어,"일본은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한,미,일 군사교류와 공조를 외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며"북한 핵이 두렵다면 우리도 국토수호를 위해 핵을 보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하면서"일본의 신무기 군사대국화.북한에 핵무기등 주변국들은 스텔스와 핵으로 무장하는 마당에 대한민국은 무엇 하였는가"라고 반문하듯 비꼬았다.

 

그러면서,"일본이 도발적이 아니면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 독도를 빙자로한 과거의 침략시절 되풀이 아닌가. 조선 

 

▲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국제 사기극 행사 다케시마날을 진행하는 일본이다"며"한.미.일 군사공조는 모순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오 대표는 "현재 위안부 문제만으로도 볼 수 있는 일본의 간악한 술수에 우리는 더 이상 참을수가 없다.내 민족을 죽이자고 일본을 끌어 들이는가"라며"일본군의 단 한발에 총알이 내 민족을 향한다면 우리의 총구는 가차 없이 일본군 관자

 

이어,"일본은 국제 사기극행사 다케시마날을 차관급을 보내 진행함에도 일언방구도 없는 정부와 정치권에 국가관이 어디 있는가 묻고 싶다"며"일본이 대한민국의 고유영토 독도를 자국의 국방백서와 외교청서 등에 기재하였다는 것은 명백한 도발행위이다"라고 규탄하면서"일본은 즉각 국제 사기극행사 뒤편에 가려진 역사의 가림막을 내려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감추어진 간도와 대마도를 반환하길 바란다"고 강력히 촉구했다.또한,"대한민국의 영토 독도에 대하여 도발 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독도의 지하자원에 눈먼 일본과 군사공조는 그 자체가 모순이다.바로하라"고 규탄했다. 

“일본은 우리 땅 대마도를 반환하라!”
기사입력: 2014/04/22 [15:1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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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신문(발행인 최종표)
일본 아베 총리가 위안부 망언과 함께 연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에 정부 관료를 파견하는가 하면, 독도영유권을 교과서에 명기하도록 하는 등 그 수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왜곡과 거짓 포장을 통해 동해 및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속셈이다.

특히 내년부터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령했다’는 주장이 포함된다. 역사왜곡을 넘어 거짓주장을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은 아베 정부의 야욕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런 행위는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은 물론,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왜곡된 교과서 내용을 오롯이 믿고, 배우게 될 일본의 청소년들. 이들은 한국에 대한 반한감정과 함께 독도를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우리 조상의 땅’이라는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폐해는, 양국 국민 모두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실상 아베 내각의 야욕은 거침이 없다. 현재 일본은 독도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쿠릴 열도, 중국의 센카쿠 열도 등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을 자초하며 갈등국면을 야기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계속해서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 아베 정부. 이들은 스스로의 양심마저 살해한듯, 자신들의 영토로 영입시킨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도 감쪽같이 포장해버렸다.

대마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문헌 곳곳에 기록돼 있는 명백한 진실이다. 세종실록(1419년)에는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에 예속 된다”고 기록돼 있는가 하면, 동국여지승람(1486년), 여지도서(1765년), 경상도 읍지(1822년) 등에도 대마도는 부산 동래부로 명시돼있다.
더욱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대비해 부하를 시켜 만든 팔도전도에도 대마도는 조선의 땅으로 명백히 기록돼 있다. 역사적으로, 대마도 주민들은 경상도에 예속돼 조선에 조공을 바쳐왔다. 불과 16세기까지만 해도 대마도주는 조선의 국왕을 정기적으로 알현하고 관직을 임명받아왔다. 일본이 대마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한 것은 고작 19세기 후반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차례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에는 거짓으로 포장된 대마도를 반환해야 할 불안감 때문에 이를 언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꼼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무고한 주변국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거짓 억지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아베 내각의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제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억지 영유권 주장에 맞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대마도를 되찾아오는 데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교과서에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기하고,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정당성 확립에 매진해야 한다. 우리 땅 대마도를 빼앗아 가고, 독도마저 훔쳐가려는 아베 내각의 야욕과 만행에, 이제는 철퇴를 가해야 한다.

일본에 36년 동안 지배당한 것도 억울한 데 사과는커녕 또다시 국토를 침거하려는 아베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무인들이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마다 앞장섰듯, 지금 무예인들 역시 아베의 만행을 저지시키는데 나설 때이다.

역사적 근거를 통해 그간 대한민국의 영토를 점거하며 많은 혜택을 누린 일본에 영토반환은 물론, 피해보상 역시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아베 내각 역시 지금이라도 거짓주장을 멈추고, 대한민국의 영토 대마도를 조속히 반환해야 할 것이다. 과거를 망각한 국가는, 도발을 또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미래는 결국 패망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대마도 반환하라”… 반환연합회 등 국민대회

2002년부터 매주 목요일 집회

“대마도 반환하라”… 반환연합회 등 국민대회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대마도반환연합회(회장 박세환 목사)와 독도의병대(대장 오윤길 집사), 영토광복국민운동본부(본부장 임춘수) 등은 19일 낮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대한민국 대마도의 날 국민대회’를 가졌다(사진).

이날은 조선 세종 1년인 1419년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날이다. 참석자들은 국민대회를 가진 뒤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외치며 광화문 광장까지 시가행진을 했다.

연합회는 성명에서 “대마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의 영토”라며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많은 지도에도 우리 영토로 표시돼 있다”고 밝혔다. 또 “이승만 전 대통령도 60여 차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일본 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촉구했다”면서 “대마도분쟁이 동북아평화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 유엔군 맥아더 사령관의 제지로 중단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연합회는 2002년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대마도 반환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서울시청과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 대마도 반환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연내 국회에 서명지를 제출하고 ‘대마도 반환 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할 예정이다. 교육부에는 국내 초·중·고 교과서에 대마도의 일본명인 쓰시마 대신 대마도로 표기할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연합회는 오는 8월 14일 탑골공원 앞에서 제2차 국민대회를 갖는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127503&code=23111111&cp=du

"일본 대마도 반환 하라"

대마도 반환운동본부 발대식 가져


대마도 반환 운동본부 발대식

우리땅 대마도 반환운동본부'(본부장 윤용길·이하 대마도 반환운동본부)가 10일 오후 중원대학교에서 발대식을 갖고 본격 출범한 데 이어 대마도 반환운동에 본격 돌입했다.

이날 발대식엔 임각수군수와 홍관표 군의회장을 비롯한 관내 기관단체장과 주민, 외부 인사 등 150여명이 참가해 "대마도를 반환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마도 반환에 따른 결의를 다졌다.

대마도 반환운동본부는 이어 대마도가 당초 대한민국 영토인 사실을 전국에 알리고 일본을 상대로 반환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또한 대마도를 직접 방문해 이해력을 높이고 다양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해 대한민국 영토임을 집중 홍보할 방침이다.

이날 발대식에 앞서 '대마도와 독도의 비밀'이란 책을 발간한 김상훈 관동대학군단장(육군대령)은 일본이 1945년 7월 독일에서 열린 포츠담선언을 통해 대마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인정했다고 이날 특강에서 주장했다.

임각수 괴산군수는 축사에서 "대마도 반환운동을 남한의 중심지인 괴산군에서 전개하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대마도 반환운동에 군민들은 물론 전국민이 동참해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윤용길 본부장은 "일본이 대마도를 강제 점령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진만큼 대마도가 우리땅이라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활동을 반환운동본부가 전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괴산 / 김성훈 기자
활빈단,대마도 반환 일본에 강력하게 요구하라
기사등록 일시 : 2017-08-19 12:46:44   프린터


대마도 반환 요구하라! "이승만 대통령.정부수립후 3일만인 1948년 8월18일 대마도반환을 일본에 강력하게 요구

 

 

시민단체 활빈단(대표 홍정식)은 19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들에 "정부수립후 3일만인 1948년 8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반환을 일본에 강력하게 요구했다"며 日아베정권의 독도 억지 영유권 주장에 맞서 일본에 우리땅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활빈단은 “도쿄박물관내 대마도 관련 비석을 보면 우리땅임을 알수 있다”며 초대 대마도 도주로 추앙받는 소시게히사(宗重尙)는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宗)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는 기록(1740년 간행된 동래부지),1822년 편찬된 ‘경상도읍지’, ‘삼국접양지도’, ‘조선팔도지도 원본’ 에도 대마도가 부산 동래부의 부속도서로서 "역사적·지리적 문헌상으로 명백한 우리 땅이다"고 주장했다.

 

 

또 日 지도학자 구보이 노리오(久保井規 夫)교수가 이태리아 지리학자 J.H.Kerno가 1790년에 작성한 '일본과 한국'지도에 대마도를 'STRAIT OF COREA' 로 표기해 "한국해협안에 대마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대마도가 한국령임을 입증하는 고지도가 공개된 사실도 강조했다.

 

 

이어 활빈단은 문재인 대통령,강경화 외교부장관,송영무 국방부장관.김현미 국토부장관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초대 이승만 대통령도 1948.8.18일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후 이듬해 1월7일에도 재차 반환요구를 천명했다" 며 "일본처럼 남의 나라 땅 억지주장이 아닌,잃어버린 내 땅 대마도 실제 회복에 나서야만 이후 간도를 찾을 수 있어 주권국가,민족 자존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활빈단은 부산이 지역구인 김무성,하태경 의원 등 국회의원,2018년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 예상자들에게도 "대마도 실지회복을 위한 반환 대일 투쟁에 앞장 설 의지가 있는지를 유권자들에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편 독도의 날(10월25일)에 독도수호청(NGO)을 민간 청(대만에서는 이발소도 이발청으로 칭함)으로 개청 준비중인 활빈단은 역사적·지리적·국제법·문헌상으로 명백한 우리 땅인 독도를 침탈하려는 야욕을 가진 일본을 "'日本대신 섬도둑질(島嶼盜國) 倭本'으로 부르겠다"고 밝혔다. 

대마도 반환운동본부, 세미나 등 활동 넓혀

손근선 기자 2012-11-30

대마도 반환운동본부가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 등으로
대마도가 우리 영토임을 전국에 알리고 있습니다.

대마도 반환운동은
‘제 2의 항일 운동’이라고 강조하며
활동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손근선 기자의 보돕니다.

<장소>중원대학교 동본관 2층
대마도반환운동 본부가 30일
학술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세미나에서 김상훈 관동대
학군단장은 ‘제2의
항일 운동‘차원에서
대마도 반환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김상훈 관동대 학군단장
“ ”
특히 김 단장은
“일본은 국제적 신의를
지키는 차원에서
대마도를 조속히
한국에 반환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대마도반환운동본부는
이번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대마도 반환’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운동본부는
토론회 등을 열어
전 국민 상대로 대마도 반환요구를
펼칠 계획이며
대마도 방문 등
대 내외적으로
‘대마도가 우리 영토’임을
알린다는 계획입니다.

<인터뷰>윤용길 대마도반환운동본부 본부장
“ ”
한편 지난 2005년 3월
경남 마산시의회가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하는 등
대마도 반환운동이
전국적으로 일고 있습니다.ccs뉴스 손근선입니다.(편집 방철기)

[어떻게 보십니까] 대마도 반환 촉구 결의안

관련이슈  :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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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4-13 18:02:26      수정 : 2010-04-13 18:02:26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 방침으로 한일 긴장관계가 고조된 가운데 일본의 영토 야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허태열 의원은 여야 의원 50명이 국회에 제출한 바 있는 ‘대마도 반환 촉구 결의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찬성 측에선 “역사 자료로 볼 때 대마도는 우리의 고유 영토인 만큼 일본의 야욕에 맞서 반환을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반대 측에선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응할수록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 가려는 일본의 의도에 도움을 줄 뿐”이라는 논리다. 양측의 의견을 들어본다.

찬-日 고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 땅” 반환 촉구 마땅

나종우 원광대 사학과 교수
역사적으로 19세기 중반까지는 대마도가 우리 영토라는 의식을 가지고 관리를 해오다가 중반 이후에는 일본이 영유권을 행사했으며, 1950년대 들어서 대마도 영유권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13세기 일본의 사서인 ‘진대’에는 대마도에는 신라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고, 1723년 대마도의 학자 등정방이 편찬한 ‘대주편련략’에도 고려국의 ‘목’(행정구역)이라는 대목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 조정에서 대마도주에게 ‘구당관’이란 직책을 주어 우리의 속주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마도에 파견한 사신의 명칭도 경차관, 체찰사, 초무관 등 국내의 관명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마도 정벌 후 대마도주에게 보낸 세종의 교유문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대마도가 조선의 속령 내지 동번(東藩)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지도를 통해서 살펴보면 1488년 중국사신 동월이 편찬한 ‘조선팔도총도’, 1536년 중국에서 제작한 ‘황명흥지지도’, 그리고 임진왜란 시 일본군이 그린 ‘임진역에 있어서 일본군 지도’, 18세기 일본인 지리학자 하야시 헤이가 그린 ‘조선팔도지도’ 등에도 모두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 편입된 것은 명치유신 후 1871년 이후부터다. 이후 대마도 문제는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최초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52년 이 대통령은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다시 한 번 주장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바탕 위에서 대마도 문제에 다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찬-‘독도는 일본 땅’ 日 교과서 맞서 국회가 앞장서야

최진호 바다사랑실천연합 상임의장 부경대 명예교수
지난 3월30일 일본 문부성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넣도록 지시하더니 1주일 만인 4월6일에는 일본 정부가 각의를 열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이 명시된 외무성 외교청서를 확정·발표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신중한 외교’니 ‘조용한 외교’를 강조하면서 대사나 공사를 불러 유감 표명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배우고, 일본 외무성의 외교청서까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명시하는 외교문서가 확정·발표됐는데도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유감 표명만 하고 있을 것인지 답답하다.

한마디로 정부의 ‘신중한 외교’라는 답답하고 미지근한 태도에 국민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1998년 11월 28일 우리의 울릉도와 일본의 오키도의 중간 수역으로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포한 신한일어업협정을 즉각 파기 조치하고, 우리나라의 독도와 일본의 오키도를 한일EEZ로 환원 조치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유인도(有人島)로 개발하면 모든 문제가 끝날 것인데도 왜 망설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본 연합은 이미 5년 전에 ‘대마도의 날’을 선포한 바 있다. 대마도를 일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국회가 중심이 되어 대마도 반환요구 결의안을 채택한다면 대일·대정부 압박 차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반-국제법 일반원칙 어긋나고 독도해법에도 도움 안돼

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마도가 한국의 영토였기에 이제 다시 한국으로 반환돼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이를 환영하지 않을 한국인은 없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독도의 영유권 문제와 대마도 반환 문제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사안이다. 영토 취득과 관련한 국제법의 일반원칙은 해당 지역인 대마도에 대한 한국의 국가 및 정부 권한의 행사가 실질적, 지속적, 평화적, 그리고 충분한 방식으로 전개된 사실의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대마도가 임진왜란 이전까지 한국에 속한 영토였기에 이제 그 반환을 주장해야 한다는 논리는 국제법의 일반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며 전 세계의 모든 국경선이 변경돼야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한국의 공식적인 입장이 독도에 대해서는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국제사회에서 분쟁 지역으로 전혀 인식되고 있지 않은 대마도에 대한 분쟁지역화를 ‘대마도 반환 결의안’을 통해 시도하는 것은 독도 영유권 문제의 관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독도 영유권 문제의 해법은 전혀 무관한 사안과의 무리한 연계보다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되었던 한국의 영토이며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으로서의 독도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인식을 제고하는 탈정치적 조용한 외교의 유지라고 판단된다. 기존의 ‘조용한 외교’에서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로 전환된 상황에서도 그 운용에서는 ‘단호함’보다는 ‘차분함’에 방점이 있어야 한다.

반-‘독도문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日 전략 돕는 꼴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현재 일본이 영유권을 갖고 있는 대마도의 반환 촉구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일본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데 따른 대응책으로 심정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감정적 대응은 독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대마도 문제’라는 새로운 수렁으로 한일관계를 끌고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양국 국민들 간의 감정만 불편해지는 이런 방식은 지양하는 게 좋다.

그보다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독도가 우리 영토이고, 일본의 억지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연한 자세를 취하는 게 옳다. 그러면서 정부 간 채널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주지시키고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한편 민간 차원에서는 한일 역사 공동연구를 통해 일본의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응할수록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 가려는 일본의 의도에 도움을 줄 뿐이다.

물론 독도 문제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더욱 실망하는 이유는 하토야마 총리의 이율배반적 태도 때문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여러 차례 과거를 직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동아시아공동체 구상 등으로 한국, 중국 등 이웃나라와 공생을 추구하겠다고 강조해왔지만 그것이 모두 허언임이 드러났다. 일본 정부와 사회의 양식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출처 : 단기간부사관11기동기회
글쓴이 : 신현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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