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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최근 한 역사학회는 '대마도(對馬島)에 살아있는 환단고기의 숨결'이라는 주제로 역사 강좌를 개최했는데, 주제는 '임나는 대마도·쓰시마의 유래와 자연환경·대마도를 삼한이라고 기록한 이유'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사는 일본 대마도가 한반도의 ‘부속섬’이었다는 것이 <환단고기(桓檀古記)>에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계연수(桂延壽)가 편찬했다는 한국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책입니다. ‘임나(任那)’는 일본 기록에서는 낙동강 유역의 여러 가야국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나오고, 명칭은 광개토왕비문에 '임나가라(任那加羅)‘라고 보이는 것이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한 고지도(古地圖) 박물관 관장은 “과거 우리나라는 대마도를 점령하고, 수많은 군인들이 대마도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결국 대마도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대마도를 포기하게 되면서 우리 역사 속에서 대마도는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빼앗겨버리면 아무리 우리의 것이라 목소리를 높여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것은 우리가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 우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남한의 백과사전은 “쓰시마섬. 대한해협의 중간쯤에 위치한 일본의 섬으로 '대마도'라고도 부름. 섬의 인구는 약 34,000명 내외이며, 거리상으로는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에 더 가까운 섬이다. 1418년(태종 18) 대마도에 흉년이 들자 왜구들은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명나라 해안으로 향하던 중 조선의 비인(庇仁)·해주(海州) 해안에 침입했다. 이에 1419년 6월 세종은 이종무에게 군사를 내어 왜구를 토벌할 것을 명했다. 이종무는 삼남(三南)의 병선 227척, 병사 1만 7,000명으로 마산포(馬山浦)를 출발하여 대마도로 진격했다. 이 정벌을 통해 왜구의 배 127척을 빼앗아 불사르고 왜구를 소탕하는 전과를 올리고 한 달여 만에 철수했다. 쓰시마섬에 대한 정벌 혹은 토벌은 고려시대 창왕 때와 조선시대 태조 때에도 행해진 바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마산포(馬山浦)! 마산은 필자가 근무했던 경남대학교가 있는 고장입니다. ‘가고파’의 고향으로, 무학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합포만이 정겹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필자의 보금자리는 그 해안과 접해 있었는데, 마산항을 오가다 보면 ‘대마도 행 여객선’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필자는 일본을 자주 왕래하면서도 대마도가 일본 땅이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울 삼청동에 있는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부산 경남을 자주 오가게 되었는데, 친우와 제자들이 대마도 얘기를 가끔 꺼냈습니다. 결론적으로 ‘가볼만한 섬’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 살인더위를 겪으면서 문득 그 섬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대마도(TSUSHIMA)의 역사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였다는 사실은 여러 문헌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세종 원년(1419년) 조선 조정은 이종무(李從茂)를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로 삼아 대마도를 정벌했습니다. 그리고 세종 9년(1427) 7월17일 병조판서 조말생(趙末生/1370~1447) 명의로 항복하라는 문서를 보냈는데, 이 문서에는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鷄林-경주)에 예속된 곳이라 본디 우리 영토였습니다. 여러 문헌에도 그렇다고 되어 있다(對馬島 隸於慶尙道之鷄林 本是我國之地載在文籍昭然可考-대마도 예어 경상도지계림 본시아국지지재재문적소연가고)고 적고 있습니다.
일본은 대마도를 불법으로 병합한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이후 1909년 청나라와 소위 간도협약을 맺었는데, 일본이 만주 땅을 중국에 할애하는 대신 만주철도 부설권 등의 이권을 얻어내는 협약입니다. 그런데 대마도는 오키 섬보다 부산과 거리가 가까우며, 조선 때까지 우리의 영토였는데 언젠가부터 일본인들이 무단점거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첫 대통령 이승만(李承晩/1875~1965)은 1948년 8월 18일 전격적으로 '대마도 반환요구'를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발칵 뒤집히며 반발했고, 이에 대해 일본 총리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이대통령의 요구를 막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맥아더는 이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전후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데 방해되는 행위로 간주하고 이 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했습니다. 일본이 대한민국의 독도를 내놓으라고 아우성인데, 독도 수호(守護)는 물론, 대마도 반환요구'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마도는 남북으로 82km, 동서로 18km인 길쭉한 모습의 두 개 섬으로 되어 있고, 총면적은 714㎢에 이릅니다. 이 섬은 일본보다는 한국에 가깝습니다. 한국 남단에서는 53km, 일본 규슈(九州)에서는 147km 떨어져 있습니다. 대마도는 산림이 많다 보니 농사는 해안지대 일부에서만 가능해 식량의 자급자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서 어업을 주업으로 삼고, 잡은 어물을 배에 싣고 한반도로 가서 물물 교환하여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대마도 가는 뱃길은 멀지 않았습니다. 260년간 조선과 일본, 두 나라 교류에 가교역할을 했던 곳, 조선통신사가 떠오르는 곳, 그곳의 이즈하라항(嚴原港)에 도착하면, 조선통신사 교역 200주년 기념벽화를 보게 되고, 대마도 역사민속자료관&조선통신사의 비(碑)와 덕혜옹주 결혼 경축 기념비도 만나게 되고,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선생의 순국비가 있는 수선사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대마도의 북섬과 남섬을 이어주는 만관교(萬關橋)가 있는 미쓰시마를 거쳐 가미쓰시마와 히타카츠...마우다 해수욕장, 조선국 역관사 순난비, 슈시의 단풍길, 한국전망대도 보게 됩니다.
기후가 부산과 유사한 대마도는 절경(絶景)도 비경(秘境)도 없는 섬이지만 우리나라 서민들의 휴양 장소로는 제격입니다. 부산과 지척(咫尺)이고, 낚시와 등산하기가 좋은 곳입니다. 여객선 운행의 수준을 높이고 사계(四季)의 아름다움을 알린다면 많이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일본인들이 발을 들여놓을 자리 하나 없게 만든다면? 필자는 오는 시월부터 새로 재촬영하는 사이버강좌 <동북아의 역사와 문화>에서 일본 대마도를 강의할 것입니다. 이 과목을 수강하는 경남대, 경기대 등의 학생들에게도 적극 홍보할 것입니다. 우리의 땅이었던 일본 대마도(對馬島)를 실질적인 우리 땅처럼 만들 수도 있겠단 망상을 해 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애국국민운동대연합,"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강력 촉구 카페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iframe 태그를 제한 하였습니다. 관련공지보기▶▲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국제 사기극 행사 다케시마날을 진행하는 일본이다"며"한.미.일 군사공조는 모순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독도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
▲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국제 사기극 행사 다케시마날을 진행하는 일본이다"며"한.미.일 군사공조는 모순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그러면서,"간악한 일본의 음흉한 술수는 현재 진행형임에도 한마디 언급하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일본은 현재 군사 대국화를 향해 브레이크
오 대표는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영토 임에도 일본 국방백서와 외교청서 등 외교적으로도 사기극 홍보 책자
▲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국제 사기극 행사 다케시마날을 진행하는 일본이다"며"한.미.일 군사공조는 모순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이어,"일본은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삼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한,미,일 군사교류와 공조를 외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며"북한 핵이 두렵다면 우리도 국토수호를 위해 핵을 보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하면서"일본의 신무기 군사대국화.북한에 핵무기등 주변국들은 스텔스와 핵으로 무장하는 마당에 대한민국은 무엇 하였는가"라고 반문하듯 비꼬았다.
그러면서,"일본이 도발적이 아니면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 독도를 빙자로한 과거의 침략시절 되풀이 아닌가. 조선
▲ 애국국민운동대연합(대표 오천도)는 22일 오후 1시와 2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정문과 성북구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통해 "국제 사기극 행사 다케시마날을 진행하는 일본이다"며"한.미.일 군사공조는 모순이다. 독도는 대한민국 고유 영토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에 넘긴 간도 땅 과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오 대표는 "현재 위안부 문제만으로도 볼 수 있는 일본의 간악한 술수에 우리는 더 이상 참을수가 없다.내 민족을 죽이자고 일본을 끌어 들이는가"라며"일본군의 단 한발에 총알이 내 민족을 향한다면 우리의 총구는 가차 없이 일본군 관자
이어,"일본은 국제 사기극행사 다케시마날을 차관급을 보내 진행함에도 일언방구도 없는 정부와 정치권에 국가관이 어디 있는가 묻고 싶다"며"일본이 대한민국의 고유영토 독도를 자국의 국방백서와 외교청서 등에 기재하였다는 것은 명백한 도발행위이다"라고 규탄하면서"일본은 즉각 국제 사기극행사 뒤편에 가려진 역사의 가림막을 내려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감추어진 간도와 대마도를 반환하길 바란다"고 강력히 촉구했다.또한,"대한민국의 영토 독도에 대하여 도발 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독도의 지하자원에 눈먼 일본과 군사공조는 그 자체가 모순이다.바로하라"고 규탄했다.
“일본은 우리 땅 대마도를 반환하라!” 기사입력: 2014/04/22 [15:19] ㅣ 최종편집:
일본 아베 총리가 위안부 망언과 함께 연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에 정부 관료를 파견하는가 하면, 독도영유권을 교과서에 명기하도록 하는 등 그 수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왜곡과 거짓 포장을 통해 동해 및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속셈이다.▲ 무예신문(발행인 최종표)
특히 내년부터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령했다’는 주장이 포함된다. 역사왜곡을 넘어 거짓주장을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은 아베 정부의 야욕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런 행위는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은 물론,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위태롭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왜곡된 교과서 내용을 오롯이 믿고, 배우게 될 일본의 청소년들. 이들은 한국에 대한 반한감정과 함께 독도를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우리 조상의 땅’이라는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폐해는, 양국 국민 모두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실상 아베 내각의 야욕은 거침이 없다. 현재 일본은 독도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쿠릴 열도, 중국의 센카쿠 열도 등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을 자초하며 갈등국면을 야기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계속해서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 아베 정부. 이들은 스스로의 양심마저 살해한듯, 자신들의 영토로 영입시킨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도 감쪽같이 포장해버렸다.
대마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문헌 곳곳에 기록돼 있는 명백한 진실이다. 세종실록(1419년)에는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에 예속 된다”고 기록돼 있는가 하면, 동국여지승람(1486년), 여지도서(1765년), 경상도 읍지(1822년) 등에도 대마도는 부산 동래부로 명시돼있다.
더욱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대비해 부하를 시켜 만든 팔도전도에도 대마도는 조선의 땅으로 명백히 기록돼 있다. 역사적으로, 대마도 주민들은 경상도에 예속돼 조선에 조공을 바쳐왔다. 불과 16세기까지만 해도 대마도주는 조선의 국왕을 정기적으로 알현하고 관직을 임명받아왔다. 일본이 대마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한 것은 고작 19세기 후반으로,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차례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에는 거짓으로 포장된 대마도를 반환해야 할 불안감 때문에 이를 언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꼼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제국주의는 무고한 주변국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거짓 억지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아베 내각의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제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억지 영유권 주장에 맞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대마도를 되찾아오는 데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교과서에 대마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기하고,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정당성 확립에 매진해야 한다. 우리 땅 대마도를 빼앗아 가고, 독도마저 훔쳐가려는 아베 내각의 야욕과 만행에, 이제는 철퇴를 가해야 한다.
일본에 36년 동안 지배당한 것도 억울한 데 사과는커녕 또다시 국토를 침거하려는 아베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무인들이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마다 앞장섰듯, 지금 무예인들 역시 아베의 만행을 저지시키는데 나설 때이다.
역사적 근거를 통해 그간 대한민국의 영토를 점거하며 많은 혜택을 누린 일본에 영토반환은 물론, 피해보상 역시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아베 내각 역시 지금이라도 거짓주장을 멈추고, 대한민국의 영토 대마도를 조속히 반환해야 할 것이다. 과거를 망각한 국가는, 도발을 또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미래는 결국 패망임을 명심하기 바란다.“대마도 반환하라”… 반환연합회 등 국민대회
2002년부터 매주 목요일 집회
대한민국대마도반환연합회(회장 박세환 목사)와 독도의병대(대장 오윤길 집사), 영토광복국민운동본부(본부장 임춘수) 등은 19일 낮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대한민국 대마도의 날 국민대회’를 가졌다(사진).
이날은 조선 세종 1년인 1419년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날이다. 참석자들은 국민대회를 가진 뒤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외치며 광화문 광장까지 시가행진을 했다.
연합회는 성명에서 “대마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의 영토”라며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많은 지도에도 우리 영토로 표시돼 있다”고 밝혔다. 또 “이승만 전 대통령도 60여 차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일본 정부에 대마도 반환을 촉구했다”면서 “대마도분쟁이 동북아평화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 유엔군 맥아더 사령관의 제지로 중단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연합회는 2002년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대마도 반환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서울시청과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 대마도 반환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연내 국회에 서명지를 제출하고 ‘대마도 반환 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할 예정이다. 교육부에는 국내 초·중·고 교과서에 대마도의 일본명인 쓰시마 대신 대마도로 표기할 것을 요청할 방침이다. 연합회는 오는 8월 14일 탑골공원 앞에서 제2차 국민대회를 갖는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127503&code=23111111&cp=du"일본 대마도 반환 하라"
대마도 반환운동본부 발대식 가져
우리땅 대마도 반환운동본부'(본부장 윤용길·이하 대마도 반환운동본부)가 10일 오후 중원대학교에서 발대식을 갖고 본격 출범한 데 이어 대마도 반환운동에 본격 돌입했다.대마도 반환 운동본부 발대식
이날 발대식엔 임각수군수와 홍관표 군의회장을 비롯한 관내 기관단체장과 주민, 외부 인사 등 150여명이 참가해 "대마도를 반환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마도 반환에 따른 결의를 다졌다.
대마도 반환운동본부는 이어 대마도가 당초 대한민국 영토인 사실을 전국에 알리고 일본을 상대로 반환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또한 대마도를 직접 방문해 이해력을 높이고 다양한 활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해 대한민국 영토임을 집중 홍보할 방침이다.
이날 발대식에 앞서 '대마도와 독도의 비밀'이란 책을 발간한 김상훈 관동대학군단장(육군대령)은 일본이 1945년 7월 독일에서 열린 포츠담선언을 통해 대마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인정했다고 이날 특강에서 주장했다.
임각수 괴산군수는 축사에서 "대마도 반환운동을 남한의 중심지인 괴산군에서 전개하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대마도 반환운동에 군민들은 물론 전국민이 동참해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윤용길 본부장은 "일본이 대마도를 강제 점령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진만큼 대마도가 우리땅이라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활동을 반환운동본부가 전개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괴산 / 김성훈 기자
우리땅 대마도를 반환하라 - 스크렙 자유 게시판
다른 카페에서 양해를 구하고 스크렙을 해왔습니다. 요즘은 정치적인 글과, 음모론 따위의 글이 안 올라와서 카페가 조용한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정自淨을 함과 동시에 끝도 없고, 별무의미한 일로 씨끄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이 카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아래 내용은 재차 상기하고자 해서 가져온 것으로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이 좁은 국토에서 좌,우니 진보,보수니 하면서 뜻있는 민초들의 가슴만 멍들게 하지말고, 밖으로 눈을 돌려서 대국적으로 보자는 뜻으로 가져왔습니다. [스크랩] 우리땅 대마도를 반환하라 ~~녹림거사님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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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반환하라 ~~ 자유게시판 - 주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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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25. 21:50
http://blog.naver.com/mcj228/133553203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마도 반환하라고 日本에 수십 차례 요구한 바 있다.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3일 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을 열고, 대일관계에 관해 중대한 발언을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上島及下島 (상도와 하도)의 二島(두 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삼백 오십년 전 일본이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렇게 ‘대마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주장하자,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반발하였다. 이에 이 대통령은 동년 9월 9일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고 영유권을 재확인했다.
다음해인 1949년 1월 8일 연두 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래된 해상 경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 번 대마도 반환문제를 강력히 제기하였다. 또한 동 회견에서 “대일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起算)하여야 한다. 특히 대마도는 별개로 하여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대마도가 우리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350년 전 일본인들이 그 섬에 침입하여 왔고 도민들은 민병을 일으켜 일본인과 싸웠다.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일본인들이 뽑아다가 도쿄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비석도 찾아올 생각이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년 12월 31일 대통령 연말기자회견에서 거듭하여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역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력히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지브롤터 Gibraltar - 스페인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 지중해와 대서양의 입구에 있는 작은 지역 당연히 스페인 영역이라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영국령 식민지이다)
(식민지주의 Colonialism은 강대국의 논리로 약소국을 침탈하면서 시작하였고, 정치 경제적으로 행해왔던 악행은 설필로 표현할 수 없을 만치 유치한 구석도 많다)
이 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는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와 함께 한일회담 협상과 맞물리면서 60여 차례나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보도된 국내외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의 대마도를 반환 받는 것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중국 여론도 이 같은 주장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이를 지원하는 대규모 시위를 했던 사실 역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지난 2008년 이승만 대통령이 학부를 마쳤던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 정책 연수를 위해 1년간 머물렀다.
건국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지 워싱턴대에서 1907년 청년 이승만의 흔적을 찾던 김 대령은 우연히 조지워싱턴대 도서관에서 이승만의 영문 저서 ‘Japan Inside Out’을 발견하고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책의 내용 중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오래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있다.’라는 이 대통령의 언급을 발견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시절, 김 대령은 이 ‘한-일 간의 오래 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어디를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에 오른 뒤 기회만 주어지면 “대마도를 불법 점거한 일본은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수십 차례나 주장한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 년 간의 집요한 연구와 추적 끝에 김 대령은 이승만의 ‘대마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의 명백한 근거를 찾았고, 틈만 나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밝혀냈다.
김 대령은 지난 5월 11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의 제3회 '이승만 포럼'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그 명쾌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김 대령은 이 대통령이 주장했던 ‘오래된 해상경계는 대마도와 일본 본 섬 사이의 현해탄'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대마도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가 된다.
(일본은 끈질기고 집요하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한다)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냥 빼앗길 뻔했다)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93)는 1832년, '삼국접양지도'를 만든다. 이 지도의 해설서가 '삼국통람도설'이다. 그는 이 책에서 당시 일본과 그 주위 3 개국(조선, 류쿠국 오끼나와, 하이국 북해도)과 무인도였던 오가사와라(小笠原, 일본 남부 태평양 1,000km지점의 80여개 군도)제도에 대한 지도와 해설을 해놓았다.
대마도는 한국땅, 대마도를 반환하라3
-세종실록 1년 6월 9일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했으니, 본디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 다만 그 땅이 심히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는지라, 이러므로 왜인으로서 그 나라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다 와서, 함께 모여 살아 굴혈을 삼은 것이며, 때로는 도적질로 나서서 평민을 위협하고 노략질하여, ..(중략)
-세종실록 1년 7월 17일...
내가 생각하건대, 대마도는 바로 두지도(豆只島)이다. 김중곤(金中坤)의 노비 문기(奴婢文記)에 있기를, ‘두지(豆只)에 사는 사람이라.’ 하였으니, 대마도는 곧 우리 나라 지경인데, 왜인에게 무엇이 관계되랴.
-세종실록 23년 11월 21일
우의정 신개는 논의하기를,
“신의 뜻도 황희 등의 의논과 같사오나, 왜인이 고기잡기를 청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신이 망령되게 생각하기를, 대마도는 본시 우리 나라 땅이온데 고려의 말기에 기강(紀綱)이 크게 허물어져서 도적을 금하지 못하여 드디어 왜적의 웅거하는 바가 되었사온데...(중략)
-세종실록 23년 11월 22일
권선(勸善)이 또 아뢰기를,
“대내전 관반(館伴) 노라가도로(盧羅加都老)가 말하기를,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이므로, 대내전도 조선과 더불어 협공(夾攻)하여 대마도를 조선에 돌리고자 하였더니 불행하게도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의 대내전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고 하였습니다.”
-세종실록 26년 4월 30일
대마도(對馬島) 한 섬[一島]도 옛날 문적에 우리 나라의 말 기르는[牧馬] 땅으로 실려 있고, 왜인도 또 본래 우리 나라의 섬이라고 일러 왔는데, 그러나 그 섬이 종말에는 도적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제 고초도(孤草島)도 아주 허가하고 돌아보지 아니한다면 뒷날에 대마도와 같이 될는지 어찌 알겠는가...(중략)
-세종실록 29년 5월 26일
[청로 이용웅 칼럼]우리의 땅이었던 일본 대마도(對馬島)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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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반환 요구하라! "이승만 대통령.정부수립후 3일만인 1948년 8월18일 대마도반환을 일본에 강력하게 요구
시민단체 활빈단(대표 홍정식)은 19일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들에 "정부수립후 3일만인 1948년 8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반환을 일본에 강력하게 요구했다"며 日아베정권의 독도 억지 영유권 주장에 맞서 일본에 우리땅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활빈단은 “도쿄박물관내 대마도 관련 비석을 보면 우리땅임을 알수 있다”며 초대 대마도 도주로 추앙받는 소시게히사(宗重尙)는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宗)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는 기록(1740년 간행된 동래부지),1822년 편찬된 ‘경상도읍지’, ‘삼국접양지도’, ‘조선팔도지도 원본’ 에도 대마도가 부산 동래부의 부속도서로서 "역사적·지리적 문헌상으로 명백한 우리 땅이다"고 주장했다.
또 日 지도학자 구보이 노리오(久保井規 夫)교수가 이태리아 지리학자 J.H.Kerno가 1790년에 작성한 '일본과 한국'지도에 대마도를 'STRAIT OF COREA' 로 표기해 "한국해협안에 대마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대마도가 한국령임을 입증하는 고지도가 공개된 사실도 강조했다.
이어 활빈단은 문재인 대통령,강경화 외교부장관,송영무 국방부장관.김현미 국토부장관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초대 이승만 대통령도 1948.8.18일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후 이듬해 1월7일에도 재차 반환요구를 천명했다" 며 "일본처럼 남의 나라 땅 억지주장이 아닌,잃어버린 내 땅 대마도 실제 회복에 나서야만 이후 간도를 찾을 수 있어 주권국가,민족 자존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활빈단은 부산이 지역구인 김무성,하태경 의원 등 국회의원,2018년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 예상자들에게도 "대마도 실지회복을 위한 반환 대일 투쟁에 앞장 설 의지가 있는지를 유권자들에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편 독도의 날(10월25일)에 독도수호청(NGO)을 민간 청(대만에서는 이발소도 이발청으로 칭함)으로 개청 준비중인 활빈단은 역사적·지리적·국제법·문헌상으로 명백한 우리 땅인 독도를 침탈하려는 야욕을 가진 일본을 "'日本대신 섬도둑질(島嶼盜國) 倭本'으로 부르겠다"고 밝혔다. |
대마도 반환운동본부, 세미나 등 활동 넓혀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 등으로
대마도가 우리 영토임을 전국에 알리고 있습니다.
대마도 반환운동은
‘제 2의 항일 운동’이라고 강조하며
활동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손근선 기자의 보돕니다.
<장소>중원대학교 동본관 2층
대마도반환운동 본부가 30일
학술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세미나에서 김상훈 관동대
학군단장은 ‘제2의
항일 운동‘차원에서
대마도 반환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김상훈 관동대 학군단장
“ ”
특히 김 단장은
“일본은 국제적 신의를
지키는 차원에서
대마도를 조속히
한국에 반환하라“고 촉구했습니다.
대마도반환운동본부는
이번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대마도 반환’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운동본부는
토론회 등을 열어
전 국민 상대로 대마도 반환요구를
펼칠 계획이며
대마도 방문 등
대 내외적으로
‘대마도가 우리 영토’임을
알린다는 계획입니다.
<인터뷰>윤용길 대마도반환운동본부 본부장
“ ”
한편 지난 2005년 3월
경남 마산시의회가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하는 등
대마도 반환운동이
전국적으로 일고 있습니다.ccs뉴스 손근선입니다.(편집 방철기)
[어떻게 보십니까] 대마도 반환 촉구 결의안
찬-日 고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 땅” 반환 촉구 마땅
나종우 원광대 사학과 교수 |
13세기 일본의 사서인 ‘진대’에는 대마도에는 신라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고, 1723년 대마도의 학자 등정방이 편찬한 ‘대주편련략’에도 고려국의 ‘목’(행정구역)이라는 대목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 조정에서 대마도주에게 ‘구당관’이란 직책을 주어 우리의 속주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마도에 파견한 사신의 명칭도 경차관, 체찰사, 초무관 등 국내의 관명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마도 정벌 후 대마도주에게 보낸 세종의 교유문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대마도가 조선의 속령 내지 동번(東藩)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지도를 통해서 살펴보면 1488년 중국사신 동월이 편찬한 ‘조선팔도총도’, 1536년 중국에서 제작한 ‘황명흥지지도’, 그리고 임진왜란 시 일본군이 그린 ‘임진역에 있어서 일본군 지도’, 18세기 일본인 지리학자 하야시 헤이가 그린 ‘조선팔도지도’ 등에도 모두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 편입된 것은 명치유신 후 1871년 이후부터다. 이후 대마도 문제는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최초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52년 이 대통령은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다시 한 번 주장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바탕 위에서 대마도 문제에 다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찬-‘독도는 일본 땅’ 日 교과서 맞서 국회가 앞장서야
최진호 바다사랑실천연합 상임의장 부경대 명예교수 |
한마디로 정부의 ‘신중한 외교’라는 답답하고 미지근한 태도에 국민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1998년 11월 28일 우리의 울릉도와 일본의 오키도의 중간 수역으로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포한 신한일어업협정을 즉각 파기 조치하고, 우리나라의 독도와 일본의 오키도를 한일EEZ로 환원 조치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유인도(有人島)로 개발하면 모든 문제가 끝날 것인데도 왜 망설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본 연합은 이미 5년 전에 ‘대마도의 날’을 선포한 바 있다. 대마도를 일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국회가 중심이 되어 대마도 반환요구 결의안을 채택한다면 대일·대정부 압박 차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반-국제법 일반원칙 어긋나고 독도해법에도 도움 안돼
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한국의 공식적인 입장이 독도에 대해서는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국제사회에서 분쟁 지역으로 전혀 인식되고 있지 않은 대마도에 대한 분쟁지역화를 ‘대마도 반환 결의안’을 통해 시도하는 것은 독도 영유권 문제의 관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독도 영유권 문제의 해법은 전혀 무관한 사안과의 무리한 연계보다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되었던 한국의 영토이며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으로서의 독도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 인식을 제고하는 탈정치적 조용한 외교의 유지라고 판단된다. 기존의 ‘조용한 외교’에서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로 전환된 상황에서도 그 운용에서는 ‘단호함’보다는 ‘차분함’에 방점이 있어야 한다.
반-‘독도문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日 전략 돕는 꼴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 |
그보다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독도가 우리 영토이고, 일본의 억지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연한 자세를 취하는 게 옳다. 그러면서 정부 간 채널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주지시키고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한편 민간 차원에서는 한일 역사 공동연구를 통해 일본의 주장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대응할수록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 가려는 일본의 의도에 도움을 줄 뿐이다.
물론 독도 문제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더욱 실망하는 이유는 하토야마 총리의 이율배반적 태도 때문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여러 차례 과거를 직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동아시아공동체 구상 등으로 한국, 중국 등 이웃나라와 공생을 추구하겠다고 강조해왔지만 그것이 모두 허언임이 드러났다. 일본 정부와 사회의 양식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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