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대마도(對馬島)의 이야기

대마도도 알고 독도의 역사도 알아야

착한 인생 2019. 1. 1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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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19 수정됨 신고 의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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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가수 정광태가 불러 너무도 유명해진 ‘독도는 우리땅’?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1945년 한국의 광복과 함께 독도는 한국 영토로 귀속되었고, 따라서 1952년 1월 18일에 포고된 '인접해양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에서 한국 정부는 독도를 포함한 한국 영토의 한계를 명백히 하였고, 또 1954년 8월 독도에 등대를 세워 세계 각국에 통고하는 한편 독도 주변 영해 내의 수자원을 확보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일본이 1952년 1월 28일 한국에 항의하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옴으로써 독도문제가 일어났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독도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성종실록(成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등의 문헌에 따르면 조선 전기부터 우산도(于山島) 또는 삼봉도(三峯島)로 불리면서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어 있었다. 특히, 17세기에 한·일 간에 울릉도 영유권문제가 야기되었을 때는 민간외교가 안용복(安龍福)의 외교활동으로 1696년 일본으로 하여금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였다


    2. 일본은 왜! 틈 만나면 독도문제를 거론하는가?

    독도를 영유권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본으로선 어차피 남의 땅이니 자꾸 들쑤셔 국제이슈로 부각시키면 대성공이다. 시간을 두고 분쟁지역이라는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미국의 주요언론과 통신사들 모두가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부르는 판에 일본해에 떠 있는 작은 섬이 당연히 일본 것이 아니겠느냐는 믿음을 제3자에 심어주는 것이다. 독도가 이슈가 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의 대응 방식때문이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건 일본도 잘 알고 있다. 무수한 역사자료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만일 독도가 일본땅이었다면 그들은 절대로 소극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영토를 잃고도 교과서 표기조차 상대국의 눈치를 본다는 게 말이 되는가. 벼룩도 낯짝이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명분쌓기 시나리오에 들어갔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독도 대신 대마도를 애기해야 한다

    일본의 전략에 넘어가선 안 된다.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우긴다고 부르르 떨고 흥분할 필요가 없다. 아닌 말로 울릉도를 일본땅으로 주장한다면 날강도나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코웃음밖에 더 치겠는가.

    그들이 쳐놓은 덫을 묵살하고 공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대마도가 있다. 가수 정광태는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km 떨어진, 맑은날 육안으로도 보이고 대마도 주민들은 “새벽에 귀기울이면 부산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할 만큼 가깝다. 반면 일본 홋카이도에선 그 세배인 150km나 떨어져 있다.

     일본말 상당수가 고대 한국말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특히 대마도 방언에는 한국말의 자취가 진하게 남아 있다. 이남교의 ‘재미있는 일본말의 뿌리’를 보면 대마도에서 ‘초그만‘이란 말은 ‘키가 작은 사람’을 말하고 ‘높퍼’는 ‘키가 큰 사람;, ‘양반’은 그냥 양반(兩班), ‘바츨’은 ‘밭을 매는 줄’로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다고 한다.

     대마도의 일본말인 ‘쓰시마(對馬)’도 ‘두 섬’이란 말의 ‘두시마’에서 ‘쓰시마’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대마도 주민들의 증언이다. 고대 한반도의 도래인들이 거센 현해탄의 파도와 싸우며 쓰시마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 품안처럼 물이 잔잔한 항구의 이름을 ‘어머니’항으로 불렀는데 이 말이 한자어로 ‘엄원(嚴原)’이 되었고 이를 일본어로 읽어 ‘이즈하라(嚴原)’항구가 됐다는 것이다.

     12세기말 일본의 승려가 지은 ‘산가요약기(山家要略記)’에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해 기른 곳이다.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심지어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을 위해 만든 지도인 ‘팔도전도’에는 독도는 물론, 대마도도 조선땅으로 표기해 ‘공격대상’으로 삼았다니 응당 찾아야 할 우리 땅이 아닌가.


    4. 우리의 전략?

     어찌 할 것인가. 방법은 간단하다. 일본의 수법을 그대로 취하면 된다. 틈만 나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국제기구에 제소해, 분쟁지역화 하는 것이다. 없는 것도 지어내는 일본인데 조선시대까지 관리를 파견한 한반도의 부속도서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얘기를 왜 못 하는가.

     이미 일본땅인데 너무 억지는 아닐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대마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선포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있다. 바로 이승만이다.

     지난 3일 일본 NHK방송은 1948년과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두차례에 걸쳐 대마도가 한국령이라고 주장을 펼쳤지만 일본 정부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일본 정부는 커다란 위기감을 가졌으며 “만일 유엔이 승인하면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며 대응책을 모색한 외무성 극비문서의 존재가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만일 전후 한국 정부가 좀더 국제이슈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일본이 지금의 한국 정부처럼 냄비소리 요란한 대응을 했더라면 대마도는 이미 오래전 우리 땅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독도를 일본이 떠들 때마다 더 큰소리로 외치자. “우리의 땅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라"고.

    도움되시길...

    2010.09.27 수정됨 신고 의견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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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성민 글>

독도와 동해는 한국의 영토와 바다이다. 일본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토와 바다이다. 한국은 독도와 동해를 512년부터 현재 까지 지배하고 있다. 512년 신라 지증왕 지위 13년 신라 왕손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와 독도)을 정벌을 하고 신라의 영토로 편입하여 다스렸다. 독도와 동해바다는 신라를 이어 고려를 이어 조선이 지배하였다. 1693년 울릉도와 독도 사이 일본 어부들의 어선이 불법 침입 하자. 조선인 안용복과 일행이 어로, 농사 활동을 하던 중 일본 어부들의 어선을 발견하여 일본의 어부들과 싸우다가 일본의 어부들에게 일본 오키섬까지 납치당하게 된다. 오키섬주는 안용복과 일행을 돗토리성의 호키슈 태수에게 이송하게 된다. 안용복은 호키슈 태수 앞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인들의 불법 출어를 금지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호키슈 태수는 이를 에도막부(도쿠가와 막부)에게 보고하고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서계를 써 준 다음 대마도를 거쳐 조선으로 가라는 에도막부(도쿠가와 막부)의 말을 듣고 대마도에서 안용복이 쉬고 있는 중 대마도주는 에도막부(도쿠가와 막부)의 집정관이 안용복에게 써 준 서계를 빼앗고 안용복을 조선으로 보낸다. 1696년 안용복이 봄에 해산물 채취를 나갔다가 또다시 일본 어선들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불법 어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보고 즉시 그들을 쫓아내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알리기 위하여 재차 일본 돗토리현으로 가서 일본 돗토리번주에게 항의하여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명확히 하고 일본인들의 계속된 불법 침범을 근절(금지)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돗토리번주는 두 섬은 이미 조선의 영토이니 만일 다시 국경을 넘어 침범하는 자가 있으면 국서를 작성하고 역관을 정하여 무겁게 처벌할 것이다. 라고 하여 에도막부(도쿠가와 막부)의 결정사항을 전했다. 이와 같은 안용복의 활동을 계기로 일본의 에도막부(도쿠가와 막부)는 울릉도와 독도 불법 출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시킨 결과 이였다. 또한 이 사실을 근거로 일본의 메이지 정부도 1877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는 관계가 없는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1881년 국경 불법 침입이 금지 되었는데도 일본인들이 다시 울릉도와 독도에 들어와 무단 벌목한다는 사실이 울릉도 수토관에 의해 적발되었다. 이 사실은 강원도 관찰사를 통하여 조정에 보고되었고 이규원을 울릉도, 독도 검찰사로 임명하여 울릉도와 독도의 형편을 조사토록 하였다. 1882년 4월 30일에서 5월 11일까지 울릉도에서 이규원은 울릉도와 독도의 지형과 토지 비옥의 척박 정도와 섬에서 산출 되는 해산물들을 일일이 구별하여 검찰일기에 기록하였다. 또한 일본인들이 불법 침입하여 표목(표지판)을 세우고 벌목을 하고 있는 사실도 보고하였다. 이규원의 보고에 따라 조정은 즉시 일본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고 곧바로 울릉도 재 개척 사업과 독도 관리를 하였다. 1883년 4월 각 도로부터 16호 54명이 이주하여 울릉도 주민이 늘어 갔고 독도도 관리를 강화하였다. 1900년 10월에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반포하여 울릉도를 독립된 군으로 승격시키고 지방행정장관인 군수로 하여금 울릉도와 독도를 관할토록 하였다. 1905년 2월 러시아와 일본 전쟁 중 한국과 일본 협정서 이후 일제는 독도를 대한제국(한국) 정부 몰래 독도에다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붙여 시마네 현에 불법 편입 시켰다. 을사보호조약 이후인 1906년 4월 비로소 대한제국(한국)에게 이 사실이 알려졌다. 1946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한 이 후 연합국 최고 사령부는 지령(제677·1033호)에서 독도를 본래 한국 영토로 확인하여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하였고 한국이 다시 통치권을 되찾았다. (이 국제법적 효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1950년 6월 25일 한국과 북한 전쟁 이 후 1952년 연합국은 일본을 독립시켜 주기로 하고 이에 앞서 1951년 대일본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연합국은 그 준비로 1950년 연합국의 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하여 이 합의서 제 3항에서 한국에 반환할 영토는 한반도 본토와 그 주변의 모든 섬인데 그 대표적 예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와 함께 리앙쿠르 바위섬(독도)이라는 서양 호칭으로 명기하여 독도를 한국에 반환해 한국 영토로 처리됨을 극히 명료하게 밝혔다. 1950년 6월 25일 한국과 북한 전쟁 발발 이 후 1952년 7월말 울릉도 경찰서 마당 한 쪽에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島根縣隱岐郡竹島)라고 쓴 표목(표지판)을 특무 상사 홍순칠 군인 장군이 발견하고 군에서 제대한 청년들을 규합하여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고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여 독도를 수호하였다. 1950년 6월 25일 한국과 북한의 전쟁 혼란의 틈을 타 일본이 1953년 4월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보내 불법 침입하자 독도의용수비대 한국군이 일본군과 수 십 차례 총격전(전쟁)을 벌여 일본군을 격퇴시켰다. 이를 보면 독도와 동해는 한국의 고유 영토와 바다이다. 님이 그런 생각을 하신다면 님의 착각이고 더구나 조상님이 지킨 이 땅을 욕되게 하는 짓이고 우리 조국을 팔아 먹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독도과 일본 땅이라는 말은 삼가해주십시오..

알겠습니까. 잘 못 하면 민족의 반역자와 다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