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국한시교실/ ☞ 三體詩

用事와 표절

착한 인생 2019. 9. 25. 16:18

 

 

최근 논문표절 문제가 잇따르자, 일각에서 애국가 가사도 표절이라는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러니 애국가를 폐기하거나 다시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문서당 사람 대부분은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표절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황하가 (말라서) 띠처럼 되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아지게) 될지라도, 공신들의 나라는 후손에게 영원히 평안이 미치게 하라”(使河如帶 泰山如礪 國以永寧 爰及苗裔)-通鑑節要·漢紀·世宗孝武皇帝(下). 항우를 무찌르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이 수십 년간 전쟁으로 피폐해진 중국 각지 제후를 임명하면서 당부한 말이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말리리”(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이는 조선시대 남이장군(1441∼1468)이 대장부 포부를 읊은 시 앞부분이다.
이쯤되면 남이장군 시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는 애국가 가사가 한고조 말과 비슷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이 마르고 산이 닳도록’ 영원하라는 발상은 누가 봐도 똑같다
그러나 한문에서는 표절이라 하지 않는다. 특히 시에는 용사(用事)라는 작법이 있어서 이렇게 따다 쓰는 것을 오히려 높이 평가했다.

용사는 인용고사(引用故事)의 준말로 고전이나 여러 사람 시문에서 특정 관념 또는 역사적 사실 등을 따다가 한 단어나 몇 자 성어로 집약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국화가 나오면 단순한 꽃을 말하기보다 국화를 좋아했던 도연명의 작품이나 취향, 그에 얽힌 사례를 함축시켜 놓은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과 한국의 옛 시인들은 즐겨 남의 것을 인용했다. 그래서 본래보다 뜻이 새로워지고 풍성해지면 환골탈태, 점화(點化)라 하여 높이 평가했다.

두보, 이백, 맹호연, 이상은 등 쟁쟁한 이들의 작품에서도 이를 많이 볼 수 있다. 시뿐만 아니라 가사, 산문 등 여러 장르에서도 광범하게 용사를 사용했다.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이미 있던 것을 기록해 전할 뿐이지 창작하지는 않는다)’이라는 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산 정약용은 “두보의 시가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쓰되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자작인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출처가 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시성(詩聖)이라는 칭호를 얻게 한 까닭”이라고 하며 용사를 적극 옹호했다. 이런 맥락에서 글은 자자유래처(字字由來處·문장 글자마다 인용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촌부회담체(村夫會談體·뭘 모르는 촌사람들이 모여서 지껄이는 문체)라며 얕잡아 봤다.


春草碧色 봄풀 푸르고

春水綠波 물결도 푸르네

送君南浦 남포에서 그대와 이별하니

傷如之何 아픈 이 마음 어찌하나

 

 雨歇長堤草色多 비 갠 긴둑엔 풀빛 짙고

送君南浦動悲歌  그대 보낸 남포에서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꼬

別淚年年添綠波 해마다 눈물이 강물에 더해지니

앞은 중국육조시대 강엄의 별부(別賦)이고, 뒤는 고려시대 정지상의 대표작 ‘대동강’이다. 어떤 사람은 정지상이 강엄의 시를 통째로 들어다 썼다고 했다.

그러나 표절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본래 시에서 환골탈태, 새로운 맛을 드러냈으므로 ‘대동강’이 명작이라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정몽주의 ‘춘흥’도 맹호연의 ‘춘효’를 점화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당나라의 맹호연이나 이상은 같은 대가들은 용사를 너무 사용해 난해하기로 유명하지만

위대한 시인이라는 명성에는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도 시경의 시를 인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산천에 없는 원숭이가 우리 시나 시조에 가끔 등장하는 것도 용사의 일환이다.

지금도 중국, 대만, 한국에서 통용되는 시어(詩語)사전이 있어 한시 짓는 사람들은 여기서 뽑아다가 조립하듯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견해가 많다.

저작권이나 지적재산 개념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달리 말하면 개화기까지 용사는 정당하고 합당한 시작법이었다. 애국가 가사는 그런 시절 작품이다. 따라서 표절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당시 상황을 너무 외면한 처사다. 가사내용이 시대에 맞지 않으니, 진취적 기상과 희망을 담은 뜻을 새로 담자는 의미에서 개작이나 다른 애국가를 만들자면 몰라도, 표절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과거 작품에 현재의 잣대를 그런 식으로 들이대면 용사가 적극 도입됐던 고려시대 이후의 글 가운데 살아남을 작품이 거의 없다. 예전 과부보쌈, 닭서리, 수박서리를 오늘의 관점에서 성폭력이나 절도라고 비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박연호(언론인·전통문화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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