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鹿柴(녹채) 사슴우리-왕유(王維;?699-761?) : 5언 절구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빈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단지 사람소리 메아리만 들려올 뿐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석양빛이 깊은 숲으로 들어와
復照靑苔上[부조청태상] 다시 푸른 이끼 위에 비친다.
[註釋]
○ 鹿柴[녹시] : 輞川별장 주변에 있는 지명이다. ‘鹿柴’의 ‘柴’는 ‘塞’를 말하는데 古字가 塞이다. 柵과 같은 말로 ‘나무로 엮어 둘러친 울타리’를 뜻한다.
○ 返景[반경] : 동쪽으로 되비치는 햇빛. 즉 反影, 夕陽을 말한다.
○ 苔[태] : ‘莓(매)’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通釋]
빈산에 사람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데 단지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말소리와 메아리만 들려온다. 해 지며 설핏한 석양의 희미한 빛이 깊숙한 숲속에 들어와 그윽하게 다시 푸른 이끼에 비친다.
[解題 및 作法分析]
이것은 景(경)을 쓴 시이다. 鹿柴의 그윽하고 그윽한 景象을 描寫하였다. 녹시는 왕유가 은거하던 輞川別業((망천별업) 부근이다. 全詩는 그윽하고 고요함을 썼는데, 앞 兩 句는 動態를 가지고 靜景을 부각시키고, 後 兩 句는 햇빛을 가지고 寧靜한 幽景을 두드러지게 하였다. 왕유의 시, 특별히 그의 絶句는 그러한 명랑하고 淸新함과 자연의 格調를 가장 잘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明나라 李日華(이일화)가 그의 시를 批評한, ‘밝은 마음은 차가운 물 가운데 뼈요, 오묘한 말은 하늘에서 나오는 향기더라.’라는 특색을 다 갖추고 있다.
王維는 나이 40이 넘어 벼슬길도 여의치 않고, 자연에 정을 붙이면서 輞川谷口에 別業(별장)을 마련해 거의 半隱半官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 裵廸과 함께 시를 주고받는 일로 즐거움을 삼았다. 輞川은 陜西誠 藍田縣 남쪽 蟯山어귀에 있는데 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수레바퀴(輞)모양의 무늬를 이룬다거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 輞川別業은 초당의 宋之問의 소유였는데 현종에게 賜死당하고 13,4년이 지난 후 왕유가 구입하였다. 나중에 망천장은 절로 희사를 하였다. 절 이름은 淸源寺(청원사)로 개칭, 鹿苑寺(녹원사), 鹿原寺(녹원사)로 불리기도 한다.
王維는 이곳에서 裵廸과 시 읊기를 좋아하여 輞川集을 엮었는데, 20여 首이다. <鹿柴>는 20여수 가운데 제5구다.
輞川集 序頭에 , “[別業在輞川山谷, 其游止有孟城坳, 華子岡, 文杏館, 斤竹嶺, 鹿柴, 茱萸沜, 官槐陌, 臨湖亭, 辛夷塢, 南烢, 欹歌, 柳浪, 灤家瀨, 金屑泉, 白石灘, 竹籬館, 漆園, 椒園等, 與裵迪閑暇各賦絶句云爾.(여별업재망천산곡, 기유지유맹성요, 화자강, 문행관, 근죽령, 녹채, 수유반, 관괴맥, 임호정, 신이오, 남택, 의가, 유랑, 난가뢰, 금설천, 백석탄, 죽리관, 칠원, 초원등, 여배적한가각부절구운이.) ] [내 별장이 망천 산곡에 있다. 거기서 노닐며 쉬는 곳으로 맹성요, 화자강, 문행관, 근죽령, 녹채, 수유반, 관괴맥, 임호정, 신이오, 남택, 의가, 유랑, 난가뢰, 금설천, 백석탄, 죽리관, 칠원, 초원 등이 있어 배적과 더불어 한가롭게 내며 각 자 絶句를 지었다.]” 라고 하였다.
<輞川集>에 수록된 시는 왕유의 유명한 작품이기는 하나 특히 <鹿柴>는 그의 대표작으로 높이 평가 받는다.
전거나 난해한 글자 그리고 주관과 감정이 섞인 언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극히 평이한 글자로 敍景(자연의 경치를 글로 나타냄)만을 했을 뿐인데, 언어의 조형미와 회화성을 뛰어넘어 어던 한 境地를 느끼게 한다. 2구에 쓰인 ‘響’은 적막을 강조하는 말이다. <망천집>에 수록된 왕유의 시에 대하여 배적이 일일이 <同詠>을 하였는데 이 <녹시>와 같이 읊은 배적의 시는 아래와 같다.
鹿柴_裴迪 사슴 울타리_배적
日夕見寒山(일석견한산),해질녘 겨울 산을 바라보며 ●●●○○
便為獨往客(편위독왕객)。마음 편히 나그네 되어 홀로 가누나 ○○●●●
不知深林事(부지심림사),깊은 숲 속의 일은 알지 못해도 ●○○○●
但有麇麚跡(단유균가적)。노루며 사슴 발자취만은 알아보겠네. ●●○○●
*麇麚(균가) 노루와 사슴
日夕見寒山 rì xī jiàn hán shān 便為獨往客 bián wéi dú wǎng kè
不知深林事 bù zhī shēn lín shì 但有麇麚跡 dàn yǒu jūn jiā jī
[韻律]
4句가 고루 모두 律에 合한다. 그러나 失點(실점)과 失對(실대)가 되었다. 고로 위 시는 拗絶(요절)이다. 詩(시)의 압운은 上聲(상성) 22운 養韻(양운) 썼는데, 韻脚(운각)은 響(향), 上(상)이다.
※ 4.拗絶(요절) : 律絶과 古絶을 섞어 써서黏(점)과 對를 강구하지 않은 絶句이다.
[全唐詩]
卷128_27 《輞川集。鹿柴》王維
空山不見人,但聞人語響。返景入深林,複照青苔上。
사슴우리.
넓은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사람의
말소리만 들린다.
석양에 되비치는 햇빛
깊은 수풀 들어와서
푸른 이끼 돌 위에
다시 비친다.
[平仄]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平平入去平 : B식= 평두평각 )
空kōng 山shān 不bù 見jiàn 人rén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去平平上上 : b식= 평두측각)
但dàn 聞wén 人rén 語yǔ 響xiǎng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上上入平平 : A식= 측두평각)
返fǎn 景jǐng 入rù 深shēn 林lín
復照靑苔上(복조청태상)●●○○◉(入去平平去 : a식= 측두측각)
復fù 照zhào 靑qīng 苔tái 上shàng
[ 五言絶句의 平仄 定式].
一. 仄起格平聲韻定式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韻,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叶
(首句에 韻을 쓰면 응당 仄仄仄平平韻이 되어야 한다.)
二. 平起格平聲韻定式
平平平仄仄, 仄仄仄平平韻, 仄仄平平仄, 平平仄仄平叶,
(首句에 韻을 쓰면 응당 平平仄仄平韻이 되어야 한다.)
三. 仄起格仄聲韻定式
仄仄平平仄韻, 平平平仄仄叶, 平平仄仄平 仄仄平平仄叶
四. 平起格仄聲韻定式
平平平仄仄韻, 仄仄平平仄叶, 仄仄仄平平, 平平平仄仄叶
○ 평기식이다.<제1구의 제2자의 평측이 평성자이기 때문에.>
○ 측성으로 압운을 하였다.
〇 各 句를 하나하나 따로 볼 경우 평측율(이사부동)에 맞는 형식이다.
고로 율격형식에는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근체시 형식에는 맞지 않아서 拗體, 즉 拗絶(평측 형식이 맞지 않는 絶句)이다. 근체시 절구형식은 aBbA / ABbA / bAaB, / BAaB 등 4개의 형식이 있다.(위 식은 BbAa 형식임).
위 시는 평기식(제1구 제2자가 평성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형식은 黏法 및 反法에 의거 BAaB형식이 되어야만 근체시의 합율로 본다. 그러나 이 시는 측성을 운각으로 삼아 형식이 BbAa 로서 근체시와는 너무 동떨어진 拗體詩임을 알 수 있다(위 오언절구 평측 정식 四. 平起格仄聲韻定式 참고)
“四. 平起格仄聲韻定式 ..... 平平平仄仄韻, 仄仄平平仄叶, 仄仄仄平平, 平平平仄仄叶 ”
( 근체시 절구형식 aBbA / ABbA / bAaB, / BAaB 등 4개의 형식 설명은 왕력說의 설명)
〇 重字(同字)인‘人’이 중첩되어 있다.
제1구의‘不見人’과 제2구의‘人語響’의‘人(사람)’은 同字이다.
“同字重出을 피하는 것은 압운과 평측과 더불어 근체시에 있어 엄연한 규칙의 하나로 절구에도 율시에도 해당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如 ’와 ‘似’, ‘復’과 ‘還’을 ‘같다. 돌아오다’는 의미의 重複으로 썼다면 이것을 ‘意疊(의첩)이라 하여 기피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同字를 한(一) 句중에 중첩하는 경우는 허용되고 있다. 고로 위 시는 동자중출로서 합률이 아니므로 拗體이다. (동자중출을 예외로 하는 설명도 있음)
〇 失粘 및 失對이므로 拗體이다.
粘(黏)이란 제2구 제2자와 제4자의 평측과 제3구 제2자와 제4자의 평측이 서로 같은 것을 말하는데, 위 시는 이 점을 지키지 않았기에 ‘失粘’ 했다.
이른바 ‘對’란 곧 출구(홀수구)의 제2자와 제4자의 평측이 대구(짝수구)의 제2자와 제4자와 상반되는 것을 말하는데, 위 시는 이 원칙에 벗어났다. 따라서 ‘失對’라 일컫는다.
〇위 시는 측성의 압운 형태로서 上聲(상성) 22운 養韻(양운)의 韻脚(운각)으로 響(향), 上(상)을 사용하였다.
비록 對가 되어있지 아니하나, 起句와 承句, 轉句와 結句가 對처럼 뜻이 통하여 있다. 위 <鹿柴>는 근체시 평측 격식에 위배되는 절구형식이므로 ‘拗絶’이라 부르는 것이다.
*律絶(율절) 율격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절구, 또는 율시와 절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
*古絶(고절) 율시 이전에 생산되어 평운, 측운시가 있다. 시구 속에서의 평측은 율시 평측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拗絶(요절) 평측, 운율이 근체시에 맞으면서 국부적으로 규칙을 위배하는 절구. 對가 맞지 않는다.
*拗體(요체) 大漢和辭典 의하면 ‘拗體란 聲律이나 常格에 의하지 않고 평측에 和하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절구에서는 제1,2의 구에 평기식을 쓰고 제3,4의 구에는 측기식을 쓴 것, 또 절구나 율시의 변격의 일체로써 唐의 杜甫의 詩에 가장 많다. “三體詩에는 拗體部가 있다”라고 기재하고 있다.’
절구는 근체시의 일종이므로 句數, 押韻, 平仄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러나 唐代 이래의 실제의 작춤을 대하여 보면 반드시 규칙대로 지어지지 않는 것이 종종 나온다. 이렇듯 약속을 위반하여 만들어진 작품을 拗體라 한다.
[直譯 및 文章構造]
空(형:관) | 山(명:주어) | 不(부:부) | 見(동:술어) | 人(명:목적어) |
빌 공 | 뫼 산 | 아니 불 | 볼 견 | 사람 인 |
①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빈산은 사람이 보이지 않고 | ||||
但(부:부) | 聞(동:술어) | 人(명:관) | 語(명:관) | 響(명:목적어) |
다만 단 | 들을 문 | 사람 인 | 말씀 어 | 울림 향 |
②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다만 사람의 말소리만 들린다. | ||||
返(동:관) | 景(명:주어) | 入(동:술어) | 深(형:관) | 林(명:목적어) |
돌아올 반 | 볕 경 | 들 입 | 깊을 심 | 수풀 림 |
③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돌아오는 볕이 깊은 숲속으로 들어와 | ||||
復(부:부) | 照(동:술어) | 靑(형:관) | 苔(명:관) | 上(명:목적어) |
다시 복 | 비출 조 | 푸를 청 | 이끼 태 | 위 상 |
④ 復照靑苔上[부조청태상] 다시 푸른 이끼위에 비추네. | ||||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넓은 산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다만 사람의 말소리만 들린다..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석양에 되비치는 햇빛이 깊은 숲에 들어와서 復照靑苔上[부조청태상] 푸른 이끼 돌 위에 다시 비친다. |
[集評]
○ 佳處不在語言 與陶公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同- 淸 沈德潛《唐詩別裁集》
(가처불재어언 여도공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동- 청 심덕잠《당시별재집》)
훌륭한 곳은 언어에 있지 않다. 陶淵明의“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다. 유연히 남산을 보네‘와 같다. - 청 심덕잠《당시별재집》
○ 鹿柴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悟通微妙 筆足以達之 不見人之人卽主人也 故能見反照靑苔 -淸 張謙宣 .<薾齋詩談>,<淸詩話續編>
(녹시공산불견인 단문인어향 반경입심림 복조청태상 오통미묘 필족이달지 부견인지인즉주인야 고능견반조청태 -청 장겸선 .<이재시담>,<청시화속편>)
<鹿柴>의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은 微妙한 곳을 깨달아야 筆致로 전달할 수 있다. ‘不見人>’의 ‘人’은 주인을 말한다. 그렇기에 석양이 靑苔에 되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청 장겸선 .<이재시담>,<청시화속편>
○ 前二句已寫出山居之幽景 後二句言深林中苔翠陰陰 日光所不及 惟夕陽自林間斜射而入照此苔痕 深碧淺紅 相映成彩此景無人道及 惟妙心得之 詩筆復能寫出 – 現代 兪陛雲《詩境淺說》
(전이구이사출산거지유경 후이구언심림중태취음음 일광소부급 유석양자림간사사이입조차태흔 심벽천홍 상영성채차경무인도급 유묘심득지 시필부능사출 – 현대 유폐운《시경천설》)
앞의 두 구는 山居의 그윽한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뒤의 두 구는 깊은 숲 가운데 어두운 푸른 이끼는 햇빛도 비칠 수가 없는데, 오로지 석양만이 숲 가운데로 비껴 들어와 이끼를 비추니, 짙은 푸른 빛과 옅은 붉은 빛이 서로 비추어 채색을 이루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치는 다른 사람들은 말로 할 수 없고 오로지 妙心을 깨달은 사람만이 붓을 들어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 현대 유폐운《시경천설》
【참고 도서】
唐詩三百首詳析<대만 : 中華書局 편집부, 1955>,
唐詩三百首<傳統文化硏究會 송재소외5인 역주, 2012>,
唐詩三百首<啓明大學 出版部 구섭우 편저, 安秉烈 譯,2005>,
唐詩選 <보고사 奇泰完 選譯 2008>,
唐詩三百首<동서문화사 林東錫, 孫洙編 釋註 2010>,
唐詩選<명문당, 金學主 역저, 2003>,
漢詩作法의 정석<檀國大學出版部, 하영섭외 1인 著, 2009>,
[사진출처] 다송원(茶松園) http://cafe.daum.net/dasongwon
<2016. 09. 19. 孤松筆>
[唐詩三百首詳析]
鹿柴 (用木栅作栏, 为柴。 鹿柴亦为辋川别业的一景。)
空山不见人, 但闻人语响。
返景入深林, 复照靑苔上。
注解 返景 ; 景同影, 返景谓日光返照。
作意 这是写景诗, 虽幷不专写鹿柴的景, 不过偶然遇到这种情景, 卽为诗人捉住,做这样一首诗。
作法 “文章本天成, 妙手偶得之”, 这是一句古话。古来好诗,都是就天成好景, 用妙手记敍出来,幷不有意做作 ,也幷不存心要作这样一首诗。本诗好处,就在自然,毫不做作。上二句静中有动;下二句动中有静,乃是点景诗,总不外动静二字。
本诗看似兩截,上下不相连贯,但细为推敲,上半写不见,下半写见 ;不见的诗人,见的是影,同是写见,意义自属一串。
[自譯]
① 景同影, 返景谓日光返照。 (景은 影과 같다. 返景은 햇빛이 반사되어 비치는 것을 일컫는다.)
作意 这是写景诗, 虽幷不专写鹿柴的景, 不过偶然遇到这种情景, 卽为诗人捉住,做这样一首诗。
[작의] 이것은 풍경을 묘사한 시다. 비록 전반적으로 녹채의 정경이 묘사되지는 않았더라도, 우연히 접한 이런 정경을 지나칠 수 없도록 시인을 붙잡아서 이런 시를 지은 것이다.
*不过 […‧buguò]① 능가하지 못하다 ② 앞서지 못하다 ③ …해 넘길 수 없다 ④ 차마 …할 수 없다 ⑤ 대단히 ⑥ 지극히 ⑦ 몹시 ⑧ 심히
作法 “文章本天成, 妙手偶得之”, 这是一句古话
[작법] 문장은 본래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며, 뛰어난 솜씨는 그것을 우연히 얻는데 있다. 이것은 옛 말의 한 구절이다。
古来好诗,都是就天成好景, 用妙手记敍出来,幷不有意做作 ,也幷不存心要作这样一首诗
自古로 좋은 시는, 모두가 자연스럽고 교묘하게 이루어진 좋은 경치를, 뛰어난 솜씨로 기술해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일부러 모양을 꾸미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일부러 이러한 시를 지어야겠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本诗好处,就在自然,毫不做作
본래 시의 장점은 바로 자연에 있는 것이지 조금도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다。
上二句静中有动;下二句动中有静,乃是点景诗,总不外动静二字
앞의 두 구는 고요하면서도 動態的이고 뒤의 두 구는 동적임 속에 고요함이 있다. 이는 점경시로서 모두 動과 靜 두 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本诗看似兩截,上下不相连贯,但细为推敲,上半写不见,下半写见 ;不见的诗人,见的是影,同是写见,意义自属一串
시란 본래 2개가 끊어진 듯, 상하가 서로 연관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세밀히 살펴보면 앞은 창작으로 보지 않는 게 반, 뒤는 창작으로 보는 게 반이다. 보지 않는 시인이 보는 것은 影이요, 창작으로 보는 것, 。
註釋
*天成 [tiānchéng] ① 천지가 부단히 운행하여 세상 만물을 이루어 내다 ② 자연스럽고 교묘하게 이루어지다
*古话 [gǔhuà] ① 옛말 ② 고어 ③ 옛사람들의 말
*古来 [gǔlái] ① 고래 ② 자고이래로 ③ 고래로
*记叙 [jìxù] ①기술하다 ②서술하다 ③적어 넣다
*出来 [chū//‧lái]① 나오다 ② 출현하다 ③ 얼굴을 내밀다
*幷 -결코. 조금도. 전혀. 그다지. 별로. 그런 정도로. [부정사 ‘不’ ‘没(有)’ ‘无’ ‘非’ ‘未’ 등의 앞에 붙어 부정의 어기(語氣)를 하게 해주며, 약간의 반박하는 의미나 예기·예상에 반대된다는 기분을 나타냄. 부정의강조에는 “결코” “그런 정도로” 따위처럼 의미의 폭이 있음] 你以为他糊涂,他并不糊涂 너는 그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결코 멍청하지 않다 / 你弄错了,他并不是上海人 당신이 틀렸소, 그는 결코 상하이 사람이 아니오.
*有意 [yǒuyì] ① 일부러 ② 고의적으로 ③ …하고 싶다
*做作 [zuò‧zuo] ① 가식하다 ② 짐짓 …인 체하다 ③ 모양만 꾸미다
*存心 [cúnxīn] ① 고의로 ② 일부러 ③ 마음씨
*好处 [hǎochǔ] ① 장점 ② 이익 ③ 이로운 점
*毫不 [háobù] ① 조금도 …않다 ② 털끝만큼도 …하지 않다 ③ 전혀 …하지 않다
*点景 [diǎn//jǐng(r)] 점경하다. 멀리 점점이 이룬 경치. 풍경화에 다른 사물, 사람이나 동물을 그려 넣어서 흥취를 더 나게 함. 곧 산수에 인물을, 솔에 돌을 그려 넣음과 같다.
*不外 [búwài] ① 벗어나지 못하다 ② …밖에는 없다 ③ 단지 …할 뿐이다
*连贯 [liánguàn] ① 연속하다 ② 통하다 ③ 연관되다
*推敲 [tuīqiāo] ① 퇴고하다 ② 자구를 다듬다 ③ 헤아리다
*一串 [yíchuàn] 꿰미 .
(作者) 왕유(701?~761)
당나라의 시인으로, 자는 마힐(摩詰)이다. 지방 관리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문장과 음악에 재능을 보여 상류사회의 총아로 각광받았다. 과거에 합격한 뒤 지방으로 좌천되어 10년 동안 실의의 시절을 보내고 중앙 정부로 돌아왔다. 736년에 악명 높은 이임보(李林甫)가 재상이 되어 율령정치가 쇠퇴하기에 이르자 정치에 실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관직을 버리지는 못하고 관료로서 순조롭게 승진하는 한편, 망천(輞川) 지역에 거대한 별장을 지어 은거했다. 안녹산의 난 때 투항한 것이 문제가 되어 난이 평정된 뒤에 관직 박탈 처분을 받기도 했다.
상서우승(尙書右丞)의 직위에 있을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왕우승’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의 시는 도잠(陶潛)과 사령운(謝靈雲)의 흐름을 계승하여 새로운 자연미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고담(枯淡) 속에서도 풍성한 감각을 지닌 작품이 많다. 열성적인 불교 신자이기도 했고, 산수화의 거장으로서 후세에 남화의 시조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가 시화를 통해 추구한 것은 현세를 누리면서 은둔을 즐기는 이상적인 문인의 경지였다.
자는 마힐. 시·음악·그림으로 표현되는 인문 교육의 귀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7세기의 화가이자 문인인 동기창은 그의 화론서에서 왕유를 남종화의 시조로 규정했다. 남종화는 문인 취향의 그림으로서, 피상적인 묘사보다는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나중에 거의 신화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기 때문에, 진정한 왕유의 모습을 탐지해내기는 어렵다.
왕유는 당대(唐代 : 618~907)에 태어나서 자랐다. 당시 당의 수도 장안(長安)은 부와 안정을 동시에 누린 국제적 도시였다. 왕유는 21세 때 진사(進士)시험에 급제했다. 9세 때부터 이미 문학적 재능을 보였다고 하지만, 진사 급제는 특히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는 고위 관직에 올랐지만, 이내 강등되어 산둥 성[山東省]의 하찮은 직책에 임용되었다가, 734년에 수도로 소환되어 상서우승(尙書右丞)의 자리에 올랐다.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켜 756년에 수도 장안을 점령했을 때, 반란군에 사로잡혀 반란군의 수도인 뤄양[洛陽]으로 끌려갔다. 이곳에서 왕유는 억지 벼슬을 받았다. 758년 관군이 장안과 뤄양을 탈환했을 때, 왕유는 반란군에게 사로잡혀 있을 때 황제에 대한 충성을 표현한 시를 썼고, 또 고위 관리인 형이 힘을 써준 덕분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말년에 그는 속세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아내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더욱 슬픔에 빠진 그는 장안 중난 산[終南山]의 망천(輞川) 옆에 있는 시골 집에 틀어박혀 불교 연구에 몰두했다. 왕유가 지은 시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히는 것들은 대부분 시골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왕유의 예술은 당시의 기록과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그의 그림 사본을 바탕으로 하여 이론적으로 복원할 수밖에 없다. 그가 여러 가지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표현양식을 채택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나, 산수화를 발달시킨 최초의 사람 중의 하나로 특히 유명하다. 그는 생존시에 설경산수화로 유명했으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망천도 輞川圖〉라는 화권(畵卷)이다. 이 그림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으나, 후에 제작된 많은 모사품으로 대강의 구도는 보존되었다. 기록상 그의 작품에서 발묵 기법이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은 과거의 전통과 새로운 것을 함께 받아들였다. 그러나 후세에 성인에 버금가는 지위까지 올라간 것은 그가 화가인 동시에 위대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명시 선집에 그의 작품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는 이백·두보(杜甫 : 712~770) 등의 유명한 당대 시인들과 함께 서정시 형식을 완성한 시인으로 손꼽힌다.(다음백과사전)
[破墨法] 破墨이라는 말은 양[梁]의 원제[元帝]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山水松石格_산수송석격]에서 비롯되었다. 왕유[王維]의 산수화는 전부 진한 墨을 사용하여 그렸는데 부분적으로 맑은 물로써 이러한 진한 墨에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물로써 墨의 변화[破]를 꾀하는 파묵법의 초보적인 단계로 아직 墨으로 墨에 변화를 주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발묵이 먼저 옅은 묵을 칠하고 그 다음에 짙은 먹을 칠하는 방법인 데 반해, 파묵은 먼저 짙은 먹을 사용하고 그 다음에 옅은 먹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파묵은 우선 짙은 먹에 의해 대체적인 형태를 묘사한 뒤에 옅은 먹을 겹쳐서 농담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특히 암석의 주름 등을 묘사할 때 쓰는데, 입체감과 생동감을 잘 드러내는 효과를 갖고 있다. 중국의 성당 전기(8세기초)에 산수수석화에 사용되었으며, 발묵과 함께 수묵산수화의 발달에 크게 기여한 기법이다.
水破墨
墨으로써 墨에 변화를 주는 것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는 농묵[濃墨]으로 담묵[淡墨]을 변화를 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와는 반대로 담묵으로 농묵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파묵의 기법은 모두 宋, 元 이후에 비로소 이루어졌다. 농묵으로 담묵에 변화를 꾀하는 경우는 淸의 석도를 예로 들수 있는데, 그는 담묵을 바탕에 깔고 이 墨이 마르기전에 진한 墨으로 풀을 그려 水墨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번져나가는 생동감있는 효과를 얻었다. 또, 사의화조화[寫意花鳥畵]에서 꽃잎을 그릴때 먼저 연한 먹으로 잎을 그리고 이 잎이 마르기 전에 다시 진한 墨으로 잎막을 그린 것 역시 같은 예 이다.
濃破淡
담묵으로 농묵에 변화르 꾀하는 것은 옛 사람들이 山水를 그릴때 먼저 진한 墨으로 바위의 윤곽을 그리고 다시 연한 먹으로 그 들어간 부분을 처리하여 변화를 준것이나, 요즘 사람들이 인물화에서 머리카락이나 모피 같은 것을 묘사할 때 먼저 진한 墨으로 털을 그리고 다시 연한 墨으로변화를 주어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것 역시 같은 경우이다. 이 밖에도 진한 墨으로 진한 墨에 변화를 주는 방법과 연한 墨으로 연한 墨에 변화를 꾀하는 방법등도 있으나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淡破濃
아무튼 破墨의 기법은 모두 먼저 칠한 墨이 마르기 전에 서로 다른 농도의 墨이나 물로 변화를 주는 것으로 이러한 변화의 추구를 통하여 水墨은 자연스럽게 대상이 되는 사물의 밝고 어두운 면이나 가볍고 무거움, 혹은 두텁고 얇음등의 서로 다른 느낌을 표현해 낼수 있는것이다. 또 이러한 파묵의 운용은 墨色을 더욱 신선하고 분방하게 하여 마치 종이 위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모양을 만들어낸다. 또 破墨法은 풍부한 墨色의 변화라는 장점 이외에 筆의 사용이 경직되지 않는다는 장점을 동시에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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