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 府[五古, 七古]
樂府는 관서와 詩體의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악부의 유래는 漢代의 <房中歌>와 <郊祀歌>에서 비롯한다. 처음에는 三言 四言 雜言의 노래였는데, 그 후에 五言의 樂辭가 民間에서 採集되어 올려지니 이에 五言의 樂府詩가 보편적으로 流行하게 되었다. 漢 高祖 때의 唐山夫人이 지은 <房中歌>는 郊祀에 쓰이었다. 惠帝때에 夏候寬으로 樂府令을 삼았으며, 漢 武帝 때에 ‘樂府’를 설립하니 이는 관서의 명칭이었고, 아울러 李延年을 協律都尉에 임명하였다. 이로써 이 관서가 주관하는 일은 민간의 가요를 수집하여서 그 성률을 增損하여 궁정에서 부를 때에 적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악부는 민간 가요의 대명사가 되었다. ≪漢書≫ 禮樂志에 말하기를,
“武帝께서 郊祀의 禮를 정하시고, 甘泉에서 太一에게 제사지내고, 乾位에 나아가셨다. 汾陰에서 后士를 제사하니 못 속의 네모진 언덕이었다. 이에 악부를 세우고 시를 채집하여 밤에 읊으니 趙 代 秦 楚의 노래가 있었다. 李延年을 協律都尉로 삼고 司馬相如 등 수십인을 다수 천거하여 詩歌를 만들게 하고 律呂를 略論하여 八音之調에 맞게 하고 十九章의 노래를 짓게 하였다.”
고 하였다. 그 후 악부시의 유행은 날로 넓어졌으니, 한인들은 대저 郊廟曲, 鼓吹曲, 橫吹曲, 相和曲을 위주로 하였고, 위진남북조 때에는 淸商曲을 위주로 하였으며, 위진으로부터 수당에 이르기까지에는 민간의 속악에 대하여 또한 ‘淸樂’이라고도 불렀다. 唐人들이 악부시를 지음에는 많이 옛 樂府의 題目을 따라 지었는데 혹 악부의 방식에 의거하여 新調를 만들기도 하였다. 杜甫 때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樂府 新題를 시험해보았으니 女人行, 丹靑引, 茅屋爲秋所破歌 등과 같은 것들이다. 古詩의 風格을 사용하면서 악부를 썼는데 詩歌가 정신을 풍자함을 중요시하여 점점 音樂的 成分을 상실하게 되었다. 白居易 때에 이르러서는 더욱 변함이 빨라져 주장하기를 “노래와 詩는 일에 합하여서 짓는다.”고 하고, ㅡ표명하기를 ‘新樂府’라고 하였다. 이에 악부시의 범위는 더욱 넓어져서 악부시는 이미 중국 시가 가운데 중요한 詩體의 하나가 되었다.
樂府詩는 곧 風謠요 民歌인데, 음악의 變遷과 더불어 密接한 관계가 있다. 樂府의 종류는 郭茂債의 ≪樂府詩集≫의 分法에 따르면 대저 郊廟歌는 宗廟의 頌歌이고 燕射樂은 君臣 燕射의 雅樂이며 鼓吹曲, 橫吹曲은 나라 밖에서 수입한 胡樂이고 相和曲 淸商曲은 민간의 歌詩에서 채집한 것이다. 이 이외에 또 舞曲歌, 琴曲, 雜曲歌, 近代曲, 雜歌謠, 新樂府 등의 종류가 있다.
樂府詩는 歌行體인데 내용상에는 비교적 낮으면서 질박함이 있고 用詞上에서는 또한 비교적 俚俗하다. 쓰는 標題는 항상 歌· 行· 吟· 弄· 曲· 調· 謠· 辭· 引· 操· 難·艶 ·思 ·篇 ·唱 ·怨 등의 글자를 써서 古詩와 구별되게 하니 長干行, 白頭吟, 江南弄의 類들이 곧 이것이다. 樂府詩의 作法에 이르러서는 일정한 標準이 없고 몇 개 古詩의 作法과 같은 게 있으니 또한 律에 맞으며 吟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胡應麟의 ≪詩藪≫에서 말하기를 “내가 역대로 한 위 육조 당나라 사람의 시 三言 ·四言 · 五言 · 六言 · 七言 · 雜言 · 近體 · 排律 · 絶句를 상고해 보았더니 악부가 모두를 다 갖추었더라.”고 하였는데, 옳은 論評이라고 하겠다. [唐詩三百首<啓明大學 出版部 구섭우 편저, 安秉烈 譯,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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