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시이론교실/ ☞ 한시산책

]悲戀女人天官(비련여인천관) 슬픈여인 천관- 이공승(고려시대)

착한 인생 2018. 12. 19. 21:12

 

 

[한시산책]



  

 

   

사적 제340.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

 

현재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고

당시의

석탑부재와 기와편들만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곳에 있었던

천관사는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과 천관이라는 기생의 전설로 유명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김지용)

 

 

신라시대 김유신(金庾信)이 사랑하던 기생 천관(天官)의 집을

절로 바꾸어 창건하였다.

김유신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 만명부인(萬明夫人)의 엄한 훈계를 명심하여 함부로 남과 사귀지 않았지만,

하루는 우연히 기생 천관의 집에서 유숙하였다.

이에 어머니가

네가 성장하여 공명을 세워 임금과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기를 밤낮으로 바랐는데,

이제 천한 아이들과 더불어 천한 방과 술집에서 놀아난단 말이냐.”

하고 흐느껴 울면서 훈계하였다.

그 때 김유신은 어머니 앞에서 다시는 그 집

문 앞을 지나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으나,

술에 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말이 이전에 다니던 길을 따라 그녀의 집에 이르렀다.

김유신이

잘못을 깨닫고 타고 갔던 말의 목을 베고 안장을 버린 채 돌아왔다.

이에 천관은 원사(怨詞)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널리 불렸다고 한다.

훗날 김유신은 삼국을 통일한 뒤

사랑하였던 옛 여인을 위하여 그녀의 집에 절을 세우고

그녀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라 하였다.

  

 

 

창건 이후의 절의 역사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중기의 이공승(李公升)이 절 옆을 지나면서 시를 지은 것을 보면

당시까지는 존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옛터는 논으로 변하였고,

전답 사이에 무너진 탑의 기단석과 옥개석 등이

논두렁에 흩어져 있다.

 

 

悲戀女人天官<슬픈 여인 천관>

寺號天官昔有緣(사호천관석유연)

忽聞經始一悽然(홀문경시일처연)

多情公子遊花下(다정공자유화하)

含怨佳人泣馬前(함원가인읍마전)

紅鬣有情還識路(홍렵유정환식로)

蒼頭何罪謾加鞭(창두하죄만가편)

惟餘一曲歌詞妙(유여일곡가사묘)

蟾兎同眠萬古傳(섬토동면만고전)

 

절 이름을 천관이라 부르니 옛적에 무슨 사연 있었으리.

홀연히 절을 세운 내력을 듣고 보니 마음은 더욱 처연해지누나

다정하던 귀공자는 꽃그늘 아래서 노닐고

원한품은 가인은 말 앞에서 흐느끼네.

말은 유정하여 오히려 돌아가는 길을 알았건만.

하인은 무슨 죄로 부질없는 채찍만 더하였던고.

그대 남긴 그 노래 슬퍼도 아름다워

달밤을 함께 하며 만고에 전하네.

  

 

  

 

경주 천관사지의 주춧돌과 석탑재들...

 

 

 

현재의 재매정(김유신이 살던 집으로 우물터와 비각 안의 태대각간 김유신이라는 비신이 있다)천관녀의 집에서 북쪽으로 불과 3~400미터 남천 너머에 김유신의 집(현재의 재매정)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