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산책]
送藄毋潛落第還鄕
낙제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무잠을 전송하다.
태평성대에는 숨어사는 사람이 없는 법
전부 영재들이 조정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라네..
東山에 숨어사는 사람들에게
고사리 뜯는 일 생각지 못하게 했다네.
그대 이미 금마문은 멀어 졌지만
그 누가 우리들의 이상이 틀렸다고 말할 것인가?
고향 떠나 강회에서 한식을 맞았는데
지금은 장안과 낙양에서는 또 봄옷을 만드는구나.
오늘 장안 대로에 술자리 베푸니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의 이별이로다.
그대는 곧 배를 타고
얼마 안가 고향 사립문에 닿겠지.
아득히 늘어선 나무들은 나그네를 이끄는데
석양 노을은 외로운 성에 비치리.
우리 계획이 공교롭게 쓰이지 못했을 뿐
알아주는 이 없다고 한탄하지는 말게나.
…
…
…
태평시대에는 은자가 없는 법이니,
인재들은 모두 조정에 모여 든다.
이때에는 謝安처럼 東山에 은거하는 인재들이
고사리를 캐먹으며 살아가게 하지 않는다.
그대가 장안에 와서 과거에 낙방하여 金馬門은 오히려 저렇게 멀어지고 말았지만,
누가 우리들의 이상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겠는가?
기회를 만났지만 성취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대가 고향을 떠나 과거를 응시했을 때는 강회를 지나며
그곳에서 한식을 보냈는데,
지금 장안과 낙양은 또 봄옷을 지을 때가 되었다.
오늘 나는 장안의 거리에서 술자리를 마련하여 그대를 전별하니,
뜻을 같이 하는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다.
그대는 곧 배를 타고 가서 오래지 않아 고향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겠지.
먼 곳에 있는 나무는 멀리 가는 나그네를 데리고 가고,
그대가 이르는 어느 외로운 성에는 석양의 남은 빛이 비추리라.
우리들의 지모가 비록 한때에 쓰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지음이 적다고 탄식하지는 말게나!.
이 시는 송별의 시이다. 왕유가 우인인 기무잠(藄毋潛)이 과거에 떨어져 환향함을 보내면서 쓴 시이다. 주지는 그를 위로하는 데에 있으니, 한때의 뜻을 펴지 못했다고 하여 조정에 사람이 없다거나 지으(知音)이 적다거나 심지어 퇴은하여 불사하며 동산(東山)에 고답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무잠은 개원 14년에 진사가 되었으며, 진사가 될 수 있었음은 왕유의 이 시에서 고무한 바에 힘을 얻은 것이다. 전시는 가히 사다(四段)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수단(首段)에서는 성세에는 은자가 없음을 설명하고, 차단(次段)에서는 기무잠이 장안에 와서 응시를 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음과 오래 수도에 머무른 정경을 저술하였다. ‘강회한식 경락춘의(江淮寒食 京洛春衣)’는 산 넘고 물 건너와서 장안에 1년을 머무르고 나서야 비로소 돌아가게 됨을 서술하였으니, 이는 위로하는 말이다. 三段에서는 餞別의 정경을 썼으며, 말단에서는 보내는 것을 쓰며 아울러 느낌을 말하였는데 ‘원수행객’(遠樹行客)은 나그네가 멀어져 감을 그린 것이며, ‘고성낙휘(古城落暉)’는 시인이 혼자서 돌아올 때의 쓸쓸함을 표현한 것이다. 결구는 관대히 위로하는 말을 쓰면서 그에게 東山에서 재기할 뜻을 면려하여 수장과 호응이 되게 함으로써 더욱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낙제자를 위로한 시는 당시 가운데 매우 보편적인데, 왕유의 <송기무잠낙제환향(送藄毋潛落第還鄕)>은 시의가 진실하고 간절하며 정감이 풍부하다.
○ 反覆曲折 使落第人絶無怨尤 - 淸《 沈德潛唐詩別栽集》卷一“反覆과 曲折이 많은 표현이 낙제한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 원망이나 탓함을 없게 한다.”
[주석]
○ 藄毋潛[기무잠] 藄毋는 성이며, 潛이 이름이다. [672년~약 749년]. 字는 孝通 또는 季通이며, 南康人이다. 玄宗 開元 13년(725) 進士가 되어 著作郞등을 역임하였으며, 병란으로 江東에 은거하였다. 《全唐詩》시 1권이 전한다. 《唐詩棋士에 기무잠이 일찍이 上東門을 떠나며 말하기를 “열다섯 살에 서쪽으로 가서 秦에 들어갔는데, 서른 살에 집도 없는 나그네가 되었네. 시대의 운명이 明主와 맞지 않아 붉은 옷에 공연히 낙양 먼지 물들었네,<十五年行西入秦 三十無家作路人 時命不將明主合 紫衣空染洛陽塵>”라고 하였다.
○ 聖代 [성대] 太平聖代. 治世를 가리킨다. 재능이 있는 인재들이 모두 발탁되는 시기로서 이러한 시대에는 隱者가 있을 수 없다는 뜻.
○ 英靈盡來歸 [영령진래귀] 賢材들이 모두 조정에 임용됨을 뜻한다. ‘英靈’은 걸출한 인재를 뜻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서 부르기도 한다.
○ 東山客 [동산객] 隱者를 대신하는 말. 晉나라 謝安(安石)이 會稽(회계)의 東山(지금의 折江省 上虞縣 서남쪽)에 隱居하여 王羲之 등과 자연을 즐기며 벼슬을 거부하였음. 흔히 ‘東山携妓동산휴기’라 한다. 뒤로 東山은 은거의 의미로 쓰였음. <세설신어>에 東山은 회계에 있다고 한다.
○ 採薇 [채미] 殷末, 周初에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紂왕을 치고 천하를 차지하자, 孤竹國의 두 왕자인 伯夷와 叔齊가 주나라 곡식을 안 먹겠다고 首陽山에 은거하여 薇蕨(미궐, 고비와 고사리)을 뜯어 먹다 굶어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고비 뜯고 고사리 캔다는 것은 요즈음 말로 반체제(기존의 사회 ․ 정치체제를 부정하고 변혁을 도모하는 일 또는 그러한 입장)라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 旣至金門遠[기지금문원] ‘旣至’는 대궐문에 이미 도착했음을 나타낸다. 즉 會試[복시(覆試)라고도 함. 초시(初試)에 합격(合格)한 사람에게 다시 보이는 과거(科擧)]에 참가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金門遠’의‘金門’은 《三輔黃圖》에 “漢武帝가 大宛馬를 얻어 그 모습을 形象으로 제작하고 宮署門에 세워두었다. 그러므로 金馬門이라 名하였고, 줄여서 金門이라고 하였다. [漢武帝得大宛馬 以銅鑄象 入於署門 故名金馬門 簡稱金門]”고 되어 있다. 漢 나라 때 金馬門 과 玉堂殿은 문학하는 선비들이 出仕하는 官署였다. 여기서의 ‘金問遠’은 금마문이 멀어졌다는 의미로서, 결국은 과거시험에 응시는 하러 왔으나 落榜했음을 말한다. ‘君問遠’으로 된 本도 있다.
○ 吾道非[오도비] ‘내 펴고자 하는 도가 그릇된 것인가?’의 의미. 《孔子家語》에 의하면 공자가 楚 나라를 가고자 하려는데 陳나라와 蔡나라가 방해를 하는 바람에 곤경에 처했을 때 공자가 자로에게 "<시경>에 이르기를 '물소도 아니고 범도 아니면서 저 먼 들판을 쫓아다니게 한다' 하였으니 나의 도가 비운을 만났는가? 어찌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詩云 匪兕匪虎,率彼曠野。吾道非乎,奚爲至於此?시운 비시비호,솔피광야。오도비호,해위지어차]“라 하는데서 유래된 것임.
○ 江淮 [강회] 長江과 淮水. 기무잠의 고향을 말함
○ 寒食 [한식] 節侯의 하나이다. 동지가 지난 뒤 105일이 되는 날이자, 淸明節 前의 2日에 있는데, 양력으로 4월 5일이나 6일쯤 든다. 예전에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에 제향을, 민간에서는 조상의 무덤에 제사를 지낸다. 한식의 명칭은 春秋 晉의 介子推 죽음으로 인해 이날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풍속에서 유래된 것이다.
○ 京洛 [경락] 洛陽을 말한다. 낙양은 周나라 때부터 東都로 삼아 수도역할을 하였으며, 東周와 東漢 때에는 정식 도읍으로 삼았었음. 唐나라 때는 兩京 제도로 진사시험을 항상 長安과 洛陽 두 곳에서 함께 실시하였다.
○ 長安道 [장안도] 《全唐詩》에는‘臨長道’라고 되어있다. 唐代 수도로 지금의 陝西省 長安縣이다.
○ 同心 [동심] 뜻을 같이 하는 친구를 가리킨다. 《周易》<繫辭 上>의 “사람이 마음을 함께 하니, 그 날카로움이 쇠를 자를 수 있고, 마음을 함께 하는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는 말에서 나왔다.
○ 行當 [행당] 즉장(卽將). 곧. 즉시. 이제 곧. 장차. 앞으로
○ 未幾[미기] 얼마 되지 않아 ‘幾’는 몇, 얼마의 뜻
○ 拂荊扉[불형비] ‘拂’은 接近하다. 接觸하다. 건드린다는 뜻이고, ‘荊扉’는 사립문을 말한다.
○ 落暉[낙휘]석양. 서산에 지는 태양.
○ 吾謀適不用[오모적불용]《左傳》<士會行 : “繞朝贈之以策(馬 鞭)曰 : ‘子毋謂秦無人, 吾謀適不用也’
《좌전》사회행 : 요조증지이책(마편)왈 : ‘자무위진무인,오모적불용야’>”
증책(贈策) : 채찍을 준다는 뜻으로, 자기에게도 책(策)이 있었다는 것을 우의적(寓意的)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진(晉) 나라의 사회(士會)가 진(秦)에 있을 때 진인(晉人)이 이를 꾀어 돌아가게 하였는데, <士會가 떠나갈 때 진(秦)의 대부 요조(繞朝)가 말채찍을 주면서 ‘그대는 진 나라에 사람이 없다고 하지 말라. 내가 건의한 계책이 쓰이지 않았을 뿐이다.子毋謂秦無人, 吾謀適不用也)’ >하였다. 《春秋左傳 文公13年》라고 한 진나라 사람 요조(繞朝)의 말을 이 시구에서 인용한 것으로 판단됨. 適[적] ‘偶然, 공교롭게’의 뜻. 기무잠의 학식과 재능을 시험관이 알아 봐 주지 못했다는 뜻을 가리킴.
동아일보 [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109>어이설패(語以泄敗)
말이란 새어나가면 실패한다는 말로, 뜻한 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일을 비밀리에 추진하지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출처]《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
모든 것을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하게 진행해야 결과가 보장된다는 한비의 말로 ‘사이밀성(事以密成)’, 즉 일이란 은밀해야 성공한다는 말과 함께 쓰인다. 한비자 ‘세난(說難)’ 편에 나온다. 한비는 말을 가려서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처럼 서로 먹고 먹히는 격동의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서 세 치 혀는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춘추시대 진(秦)나라의 대부 요조(繞朝)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처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진(晉)나라의 대부 사회(士會)가 진(秦)나라로 달아났는데, 진(晉)나라에서는 진(秦)나라가 그를 벼슬아치로 등용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위수여(魏壽餘)를 파견해 계략을 써서 사회를 데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요조가 먼저 이런 진(晉)나라의 계획을 알고 진(秦)나라 강공(康公)에게 권유했다. “위수여가 이번에 오는 것은 사실은 사회를 속이기 위해서입니다. 당신께서 따로 그를 만나십시오.”
그러나 강공은 듣지 않았다. 위수여가 진(秦)나라에 도착한 뒤, 강공에게 사회와 함께 진(晉) 나라로 가서 위(魏) 땅의 일을 결정짓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강공은 이를 허락하고 말았다. 사회가 출발하기 전에 요조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우리 진(秦)나라에 진(晉)나라의 의도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단지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이오.”
그러자 위기의식을 느낀 사회는 자기 나라로 돌아온 뒤, 요조의 재능과 지혜가 자신을 크게 위협한다고 느껴 첩자를 보내 요조를 모함했고, 강공은 그 모함이 사실인 줄 알고 요조를 죽이고 말았다.
만일 요조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은밀히 행동했다면 이토록 허망하게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화를 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한비가 제시하는 해법은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져야만 심오한 계책을 올려도 의심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을 것(得曠日彌久, 而周澤旣渥, 深計而不疑, 交爭而不罪·사기 ‘노자한비열전’)이라는 것이다. 군주의 절대적 신임 이전에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제거된 자들은 늘 있었다.<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知音[지음] 상대방이 연주하는 음악의 뜻을 알아듣는 것으로, 서로 마음을 알아줌을 비유한다.[故事]옛날 백아(伯牙)가 마음속에 높은 산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鍾子期)가 이것을 알아듣고 “아! 훌륭하다. 높고 높음이 태산과 같다. (善哉 峨峨若泰山)”고 하였으며, 마음속에 흐르는 물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가 이것을 알아듣고 “ 아! 훌륭하다. 너르고 너름이 강하와 같다.(善哉 洋洋若江河)”라 하였다. 《呂氏春秋》<孝行覽第二二曰本味>
○ 來歸[래귀, 来归 láiguī] ①시집 오다 ②출가(出嫁)하다[남편의 집으로 들어온다는 뜻] 여기서는 인재들이 조정으로 영입된다는 의미임.
○遂令[수령] ‘遂’는 副詞로서 ‘드디어, 마침내’이 뜻이고, ‘令’역시 부사로서 ‘하여금’의 뜻으로 ‘마침내 그대로 하여금’이라는 뜻으로 풀이한다.
○樹 [수] : 여기서는 한 그루 나무가 아니라 멀리 바라보이는 물가의 숲을 뜻함.
○ 帶 [대] :중국어에서 이 한 자를 써서 열한가지 뜻을 나타내고 있는데 여기서는 "지니다", "가지다"의 뜻을 취했음. 작자가 이 시구에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진지한 벗과 이별할 때의 심정을 적절히 나타내기 위해서 "帶"자를 쓴 것이 매우 특징적임. 시각적으로 보면 이 한 글자가 작자 자신이 물가에 홀로 서서 배에 앉은 벗이 저 먼 숲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정경이 묘사되었고, 정감적으로 보면 이별을 아쉬워하는 작자의 느낌으로서는 역시 헤어지기 싫어하는 벗이 탄 배는 움직이지 않는데, 무정한 숲이 움직이면서 그 배와 벗을 함께 가져가 버린 것으로 묘사했음. 그래서 그 숲에 대한 작자의 원망이 함축되어 있음. "帶"자를 "따르다"로 이해하고 이 시구를 "멀리 멀리 나무들은 나그네를 따르고"라고 번역한 것은 시각적으로나 정감적으로 이런 특징을 포착하지 못했음.<출처 : 名家精選 唐詩新評/金澤 編著/도서출판 善>
○ 當 [당] : 중국어에서 이 자 역시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그때"라는 뜻을 나타냄. 작자가 이 시구에서 "當"자를 쓴 것이 또 다른 하나의 특징으로 인정됨. 위의 시구와 이어 보면, "배에 앉은 나그네는 저 멀리 숲속으로 사라져 가는데 쓸쓸히 바라보이는 성(城)머리에도 바로 그 시각에 저녁노을이 비끼더라"는 정경이 움직이는 그림과 같이 묘사되었음. 위의 시구와 마찬가지로 이 "當"자가 있음으로 하여 그 시각과 정감이 서로 썩 잘 융합되었음. <출처 : 名家精選 唐詩新評/金澤 編著/도서출판 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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