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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居(계거) 개울가에 살면서- 柳宗元(유종원)

착한 인생 2018. 12. 19. 21:17

[한시산책] 
  

  溪居柳宗元

久爲簪組累, 幸此南夷謫. 閑依農圃鄰, 偶似山林客.

曉耕翻露草, 夜榜響溪石. 來往不逢人, 長歌楚天碧.




-개울가에 살면서-
  오랫동안
공부에 얽매엿다가
다행히
이제 남방으로 귀양왔구나.
 
농가와 붙어서
저들과 한가로이 이웃하니
우연히도
산림의 은사 같구나.
 
아침이면
이슬 머금은
들풀 헤쳐 밭갈고
저녁이면
배를 저어 시냇돌을 울린다.
 
오거니 가거니
만나는 사람 없고
홀로
부르는 긴 노래
남방의 하늘만 푸르다.


오랫동안
관직에 얽매어 있었는데,
좌천되어
남쪽 땅으로 오게 된 것이 다행이구나.

하는 일 없이 한가롭게
농사짓는 이들과 이웃하며 지내니
뜻밖에도
 산림 속의 은자가 된 듯하다.


아침에는 밭일을 하면서
이슬에 젖은 풀을 갈아엎고,
저녁에는 배를 타고 노를 저으니
노 젖는 소리가
돌에 부딪쳐 메아리친다.



오고 가는 길에
사람 하나 마주치지 않는 외딴 곳에서
 홀로
길게 노래하니
그 노랫소리 울려 퍼지는 남쪽 하늘이
끝없이 푸르다.


이 시는 제목을 <溪居계거>라고 하였는데, 대개 永州영주의 愚溪우계를 가리켜 말하였다.
유종원은 王叔文왕숙문의 新政신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영정 원년(805) 9월 신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邵州刺史소주사마로 좌천되었고, 11월에는 영주사마로 좌천되어 그곳의 용흥사에 거처하였다. 원화 5년(810)에 零陵영릉의 남서쪽을 유람하다가 冉溪염계를 발견하였는데, 그곳의 경치의 수려함에 반하여 거처를 옮기고 이름도 ‘愚溪우계’라고 바꿨다. 이작품은 우계에 정착한 초기에 지은 것으로 ≪고문진보≫에 <우계시서>가 있다.
작자가 남방으로 좌천되어 온 이후 인간 세상의 험악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초연히 세상의 티끌을 벗어날 생각이 있어 제목을 빌어다 나타내었으니, 실제로 산림에 파묻히고자 하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청나라 심덕잠이 ≪당시별재집≫에서 말하기를 “愚溪우계에서의 여러 시들은 운수가 사나워 곤액함에 처하였을 때인데도 깨끗하고 담박한 음을 나타내어서 원망하지 않으면서 원망하고, 원망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은 것 같음을 行間행간이나 言外언외에서 때때로 만나게 된다.[愚溪諸詠 處運蹇困厄之際 發淸而淡泊之音 不怨而怨 怨而不怨 行間言外 時或遇之 우계제영 처운건곤액지제 발청이담박지음 부원이원 원이부원 행간언외 시혹우지]”고 하였는데 실로 말을 안다고 해야겠다.
이 시는 段단을 나누지 못하는데, 앞 넷 句구는 對仗대장으로 특별히 공교롭다. 제 2句구에서 ‘幸此南夷謫 행차남이적 ’이라고 하였는데, 실은 불행하였으니 대개 거꾸로 말하는 것이다. 나머지 넷 句는 담박히 사는 생활을 그려서 다른 사람에게 하나의 조용하고 평안한 느낌을 준다.



[주석]


○ 溪[계] 永州(지금의 湖南 零陵) 교외의 愚溪를 가리킴.


○ 簪組[잠조] ‘簪’은 簪纓(잠영). 관이 벗겨지지 않도록 관의 끈을 꿰어 머리에 꽂는 비녀. ‘組’은 組綬(조수), 즉 도장을 묶은 끈. 모두 벼슬아치의 물건으로 관직생활을 의미한다.


○ 南夷[남이] 좌천된 永州. 고대 南蠻이민족이 살던 지역이었음


○ 山林客[산림객] 隱居者를 말함.


○ 榜[방] 원래 배의 삿대를 말함. ≪全唐詩≫ 주에 ‘一作坊’이라 하였고 章燮本에는 ‘榜’으로 되어있는데, ‘夜榜’과 ‘曉耕’이 대구가 되므로 동사로서 ‘榜(노젓다)’으로 보았다.


○ 楚天[초천] 永州는 고대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땅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