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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施咏(서시영) -서시를 노래하다-- (王維 왕유)

착한 인생 2018. 12. 19. 21:16

[한시산책]


西施咏(서시영) -서시를 노래하다-- (王維 왕유)










여인의 아름다움은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는 것이니,
서시와 같은 미녀가
 어찌 오래도록 미천할 수 있겠는가?
아침에 그녀는 월계에서
연꽃을 따고 빨래하는 여인이었지만,
저녁이 되자
 오왕의 왕비가 되었다.


그 녀가 빈천하였을 때,
뭇 여인들과 무엇이 달랐겠는가,
 부귀한 때에야  
비로소 그녀가 세상에서 드문 미녀임을 알았다.
궁에서는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비단옷을 입는 것
또한 스스로 할 필요가 없었다.


임금이 그녀를 총애하자
그 녀는 더더욱 교태를 부리고,
임금이 그녀를 사랑하자
그녀는 총애를 믿고 시시비비를 분별하지 못하였다.
당시 월계에서 함께 빨래를 하던 동무들 중
그녀와 함께 수레를 타고
오나라 궁에 갈 수 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웃집 여인에게 권고하노니,
미모가 있다면 모르되,
없으면 그녀의 미간 찡그림만 배워서
어떻게 총애받기를 원할 수 있겠는가.
 


詩에는 말 밖에 드러나지 않는 말이 있어
독자들이 깊이 생각할 여유를 남겨두어야 비
로소 上品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이 詩를 표면에서 보면 西施를 읊는데 있지만,
실은 香草나 美人을 가지고 才士에 비유하지 않음이 없었다.
혹 어떤 사람은 諷刺에 뜻이 있다고 하는데
또한 옳지 않음이 없다.
이 시는 왕유 초기의 작품으로,
西施의 지위 변화와 東施의 效顰(효빈)을 들어
炎凉世態를 개탄하고 있다.
앞의 네 구는 서시가 출중한 미모로 인해 미천한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吳王의 비가 되었음을 말하였고,
다음 여섯 구는 총애를 얻은 후 달라진 서시의 지위를 묘사하였다.
마지막 네 구는 이 시의 주제부분인데,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분명히 알아야 함을 勸戒하고 있다.
만약 서시와 같은 미모가 없는 사람,
즉 東施와 같은 이가 서시를 흉내 내 미간을 찡그려 총애를 얻고자 한다면
이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가소로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 시는 당대의 정치현실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즉 당시 李林甫, 楊國忠, 韋堅, 王鉷의 무리들이
임금의 총애를 믿고 날뛰는 것을 비판하여 지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 당나라 사람의 詩意는 반드시 題目에 있는 것아 아니다. 우승(왕유)의 <息夫人>은 원망하며 “지금의 총애로 이전의 은혜를 잊을 수 없네. 꽃을 보니 눈물 가득하여 초왕과 더불어 말하지 않네1). [莫以今時寵 能忘舊日恩 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라고 하였는데, 가령 稗說(패설)에 영왕이 떡장수 부인을 빼앗은 것2)때문에 지은 시가 실려 있지 않았다면 후인들이 무엇으로 그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서시>편의 “미천한 시절 뭇 여인과 달랐겠는가. 귀하고 나서야 드문 미녀임을 알았구나. 시녀를 불러 분단장 시키고, 비단옷도 혼자 입지 않네. 임금이 총애하니 교태 더해지고, 임금이 아껴주니 옳고 그름이 없구나.[賤日豈殊眾 貴來方悟稀 邀人傅脂粉 不自著羅衣 君寵益嬌態 君憐無是非]”에서 당시 李林甫·楊國忠·韋堅·王鉷의 무리들 때문에 지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餠師: 떡 파는 사람. 떡 장사
 
1)초왕과 더불어 말하지 않네 : 息夫人은 息侯의 아내인 息嬀식규)이다. 蔡哀侯가 息侯의 奸計로 莘의 전쟁에서 楚나라의 포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원한을 갚기 위해 楚子 앞에서 息嬀를 칭찬해 말하니, 楚子가 息國으로 가서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 息侯를 대접하다가 마침내 息國을 멸망시키고서 息嬀를 데리고 돌아왔다. 息嬀는 초나라로 온 뒤에 堵敖(도오)와 成王을 낳았으나, 초자와 말을 하지 않았다. 초자가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한 여자로 두 남편을 섬겼으니 비록 죽지는 못할망정 또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春秋左傳 莊公 14年≫
 
2)영왕이 떡장수 부인을 빼앗은 것 : 영왕은 당나라 예종의 맏아들 영이다. 영왕의; 집 근처에 떡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웠다. 영왕이 그녀의 남편에게 후한 값을 주고 그녀를 취하여 매우 총애하였다. 일년 남짓 만에 영왕이 “아직도 떡 팔던 전남편을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전 남편을 불러 만나보게 하니, 그녀가 남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눈물만 흘리며 정을 가누지 못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10여명의 객들이 모두 처연해 하였다. 이에 영왕이 객들에게 시를 짓게 하니, 왕유가 가장 먼저 시를 완성하였는데, 그 시에 “지금의 총애로 이전의 은혜를 잊을 수 없네. 꽃을 보니 눈물 가득하여 초왕과 더불어 말하지 않네. [莫以今時寵 能忘舊日恩 看花滿眼淚 不共楚王言]”라고 하였다. ≪詩話總龜 前集 卷 25≫
 

[주석]
○ 西施[서시] 春秋 말 越나라의 미녀. 이름은 夷光, 성은 施. 苧蘿山의 숯쟁이집의 딸이었으나,
  재색이 뛰어나 吳越抗爭의 와중에 미인계에 이용되어 ‘西施習步’라는 교태로운 걸음걸이까지
   익힌 다음, 월왕 句踐(구천)이 范蠡(범려)로 하여금 오왕 夫差(부차)에게 바치도록 하였다.
  오왕 부차가 매우 총애함으로 인해 오나라가 망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뒤에 범려가 그 녀를 태우고 五湖 로 사라졌다 함.
○ 詠[영] 詩體의 하나. 노래를 읊듯이 표현함.
○ 越溪[월계] 若耶溪라는 냇물. 지금의 折江省 소흥현 동남쪽에 있다. 서시는 미천할 때 월계에서
    연밥을 따던 평범한 처녀였다.
○ 吳宮[오궁] 오왕 부차의 궁궐. 오왕이 특별히 서시를 위해 세운 궁으로, 香徑과 響屧廊(향창랑)
  까지 만들었다 한다. 지금의 江蘇省 吳縣 靈巖山에 그 유지가 있다.
○ 無是非[무시비]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어떤 요구든지 모두 들어줌.
○ 浣紗[완사] 비단을 세탁함.서시가 미천할 때 회계성의 동쪽에서 비단 빨래를 했던 곳.
○ 持謝鄰家子,效顰安可希[지사린가자,효빈안가희] ‘持謝’는 부름을 받고 떠날 때 자신이 발탁된 이유를 말해줌. ‘謝’는 알려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녀 모두 ‘子’라고 하였다. ‘ 效顰(효빈)은 ≪莊子≫ <天運>에, “서시는 가슴앓이 병이 있어 찡그렸는데, 마을의 추녀가 그것  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돌아가서는 자신도 가슴을 잡으면서 찡그렸다.[西施病心而矉 其里之醜人  見而美之 鬼亦捧心而矉]”라고 하였다’. 후에 서시에 대비되는 추녀를 ‘東施’라 하여, 쓸데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웃음거리가 되거나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뜨는 것을 비유하여 ‘東施效顰’이라고 하였다. ‘希’는 총애를 얻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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